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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탁구의 뒤안길 - 탁구에 대한 맹세

by 길철현 2023. 7. 25.

1. 나는 탁구의 신에 봉사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

1. 하찮은 생업은 다른 가족에게 미룬다.

1. 일년에 적어도 366일은 탁구를 친다.

1. 하루에 최소 두 시간은 서브 연습을 한다(조시 좋으면 네다섯 시간도 OK).

1. 잔 부상은 주이상스로, 큰 부상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넘어간다.

1. 고수에겐 아양을, 하수에겐 콧방귀를.

1. (시합에 임해선) 눈에는 미소를, 마음엔 비수를.

1. 내 몸을 먼저 풀고 상대방에겐 몸 풀 기회를 주지 않는다.

1. 상대방의 반칙은 온몸으로 항의하고 내 반칙은 은근슬쩍 넘어간다.

1. 실력에서 밀리면 지극정성 타법으로, 그래도 안 되면 네트와 에지로, 아무리 해도 안 되면 강온 변화무쌍한 심리전으로 상대의 혼을 빼놓는다.

1. 아무리 지*발*을 해도 안 되면 상대를 우리 편으로 만들고, 그것도 안 될 때에는 시합 자체를 회피한다.

1. 내기 시합은 승률 120프로가 담보될 때 마지못하는 척 응해준다.

1. 시합에서 이기면 천사와 같은 미소를 머금고 악수를 청하고, 질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악마처럼 돌아선다.

1.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탁구의 신이 찾아오면 '아직도 원하는 게 남았는가'하며 신고 있던 탁구화를 벗어 귀싸대기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