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수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저수지가 날 불렀어
언제부터였을까
첫사랑이 빠져 죽은 데인 모양
저수지가 날 불렀어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닌
저수지가 날 불렀어
새벽이었나
아침이었나
태양이 뜨거운 대낮이었나
눈보라 몰아치고 모든 게 꽁꽁 어는
대한 쯤이었나
난 처음엔 당연히 듣지 못했지
저수진 무서운 곳이야
저수지를 찾는 건
인생을 허비하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엄마 아부지 삼촌 동네 어른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지
그래도 저수진 날 불렀어
목이 다 쉬고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난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면서도
마냥 무서워서
저수지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늙다리가 되어 버린 나를
저수지가 다시 한번 날 불렀어
아마도 빈사의 상태였을 거야
어느 깊은 밤
물귀신에 홀린 듯
난 저수지 앞에 서 있는 날 보았지
허연 머리털을 하고
거웃마저 희어진 채
꺼부정한 다리로
그날 모든 것이 보이는 어둠 속에서
난 저수지의 목소리를 똑똑히 보았어
저수지는 나를,
날,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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