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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

재인폭포를 소개합니다 1

by 길철현 2023. 8. 5.

현재 내 여행의 중심 테마는 호수(저수지)이지만, 한 때는 폭포가 중심축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나의 애마 아반떼를 타고 괴롭다고 훌쩍, 기분이 좋다고 훌쩍 코딱지만 한 한반도의 남쪽을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떠돌면서 이름난 폭포를 무던히도 찾아다녔다. 그런데 콕 집어  말하긴 어려워도 나의 본격적인 폭포 사랑의 시발점은 재인폭포일 것이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재인폭포는 지역 명소로, 20여 미터 높이의 수직 폭포일 뿐만 아니라 폭포를 둘러싼 주상절리형 협곡 또한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 사시사철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다. 2020년 재인폭포가 위치한 한탄강 유역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더더욱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계절 따라 수량의 변동 폭이 심한 것이 우리의 하천이라 여름 호우가 지나간 뒤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리다가도 서서히 가늘어지던 물줄기가 늦가을이면 급기야 말라 붙어서는 이름뿐인 폭포, 건폭이 되고 말기도 한다. 또 겨울이면 빙폭이 형성되어(어느 해인가는 외국인 부부가 이 재인폭포 빙폭을 등반하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3월까지 무슨 벌이라도 받는 모양 얼어붙은 채로 봄의 햇살이 자신을 풀어주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해에 따라 건폭으로 긴 겨울을 그냥 나기도 한다.
 
내가 재인폭포를 처음 찾은 것은 97년 2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이었다. 2년 전에 구입한 첫 아반떼를 끌고 친구와 민통선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별다른 기대 없이 한 번 들러보았던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이라 폭포는 말라 있었고 빙폭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다. 대신에 흥미롭게도 폭포가 떨어지던 곳 아래에는 석회암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석순 형태의 얼음덩어리가 하나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말라버린 폭포가 나에게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벼랑과 그 중간 아래 부분에 정 같은 것으로 쪼아놓기라도 한 듯한 작은 사각기둥들이 무수히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 명칭을 몰랐지만 용암의 분출과 냉각과정에서 형성되는 주상절리였다.
 
그렇지만, 재인폭포가 운명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나와 길고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당시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안내문에 적힌 슬프기 짝이 없는 (한편으로는 섬뜩하기까지 한) 전설 때문이었으리라.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인폭포는 내 마음의 기도처이자, 힘든 시간 위안을 주는 장소였다. 그리고 재인폭포 자체는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으나, 재인폭포에 접근하는 방식은 3번이나 큰 변화를 겪었다. 거기다 한탄강 댐의 건설로 한 때 수몰될 위기마저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재인폭포를 찾아 폭포를 즐기고 또 폭포와 얽힌 인물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2023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