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헌책방이 소멸되어 가고 있는 현재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좋았다. 장소가 협소하여 책은 천장까지 빈틈 없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사장님은 이 책방이 예전 장소까지 합치면 50년 된 노포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책방이 망한 이유는 알라딘 때문이 아니라, 헌책방 주인들이 책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님의 말대로 좁은 책방에는 좋은 책들이 꽤 눈에 많이 띄었고,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창비에서 나온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도 있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한 이유로 판매금지를 당한 "전두환 회고록"도 있었다. 졸지에 희귀본이 된 "전두환 회고록" 초판본의 가격은 25만 원으로 상당히 비쌌는데, 사장님은 처음엔 가격이 50만 원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현재는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그래도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했으나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적정한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라캉의 "에크리"였다. 그 난해성 때문에 한국어 완역본의 출간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9년에 라캉의 대가인 홍준기 외 3인이 완역을 해서 출간을 한 것이었다. 이 책은 새 책의 정가가 15만 원이고 시중에 팔리고 있었는데, 헌책을 15만 원을 받는 것은 "전두환 회고록"과는 달리 좀 비싼 편이었다(사장님은 라캉이 흥미로운 작가라고 말씀하시던데, 손님을 기다리는 많은 시간 책을 읽으면서 소일하는 모양인지?)
나는 창비에서 나온 시집 몇 권과 소광희 외 13인이 쓴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를 구입했다. 사장님은 좀 깎아 달라는 나의 말에 가격 흥정은 없다고 뻣뻣하게 나왔다.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고' 전략에 나는 부르는 대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은 다소 깐깐하고 타협을 잘 안 하는 성격인 듯했으나, 좁은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을 갖춰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장님의 모습에서 어려운 헌책방의 상황과 또 그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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