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배달 오토바이도 끊어지고
메밀묵 장수도 이미 지나갔다
편의점 창백한 엘이디 형광등과
자동차 블랙박스 파란 불빛만
어둠을 지키고 있는 밤
아무도 오가지 않는 홍제내 골목길로
배 불룩한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다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려는 듯
새로 태어날 생명들만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시간
온 동네가 코를 골며 잠들었는데
낡은 솜이불 뒤척이면서 왜
그대만 혼자 깨어 있는가
대답할 수 없는 물음도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눈 감고 귀막아도
새카만 침묵에 빠진 잠
무정한 마음
끝내 다가오지 않는다
조간신문과 우유 배달이 올 때까지
선하품만 가끔 보내올 뿐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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