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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서서 잠든 나무

by 길철현 2023. 8. 28.

5층 연립주택보다 훨씬 높이 자란

가죽나무 올해는 여름내

싹 트지 않고 꽃 피지 않았다

나뭇잎 하나도 없이

검은 골격만 허공에 남긴 채

살기를 멈춰버린 것 같다

겨울보다도 앙상한 모습으로

숨이 멎어버렸나

신록의 숲속에서 날아오는 텃새들

까치 까마귀 비둘기 직박구리

한 마리도 나뭇가지에 내려앉지 않는다

죽음의 뿌리 까맣게 땅속에 내린 채

뒷마당에 서서 잠든 가죽나무

동네 이웃들 지나가며 왜 죽었나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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