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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무정한 마음

by 길철현 2023. 8. 28.

치킨 배달 오토바이도 끊어지고

메밀묵 장수도 이미 지나갔다

편의점 창백한 엘이디 형광등과

자동차 블랙박스 파란 불빛만 

어둠을 지키고 있는 밤

아무도 오가지 않는 홍제내 골목길로

배 불룩한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다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려는 듯

새로 태어날 생명들만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시간 

온 동네가 코를 골며 잠들었는데

낡은 솜이불 뒤척이면서 왜 

그대만 혼자 깨어 있는가

대답할 수 없는 물음도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눈 감고 귀막아도 

새카만 침묵에 빠진 잠

무정한 마음

끝내 다가오지 않는다

조간신문과 우유 배달이 올 때까지 

선하품만 가끔 보내올 뿐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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