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당시 부르주아 문화를 죽음의 문화로 기술하면서 그 핵심에 기독교가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가 죽음을 설교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도들은 사람들에게 '이 세계'가 죄로 가득 차 있고 천국은 오직 '저 세계'에만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삶이란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오직 우리가 지은 죄 탓으로 돌린다. 우리가 그들의 함정에 말려들어 삶에 대해 불행한 느낌을 크게 가질수록 우리는 더 큰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점점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죽은 후에 벌어진다는 심판이나 지옥 같은 공상적 이야기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삶을 죽음을 준비하는 데 쓰는, 이른바 '삶을 배신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보편적 선악의 잣대로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움츠려 들게 하는 도덕주의자들이나, 영원한 보편적 진리를 들먹이며 이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의 가치를 무시하는 철학자들도 생을 병들게 하는 사람들이다. 니체는 근대 유럽인들이 자기 삶에 필요한 가치들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들에게는 도덕도 진리도 하나의 보편적 명령으로서 부과되고 있을 뿐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도덕과 진리를 모두가 떠받들고 있다. 삶을 비난하는 기독교, 삶과 무관하게 정립된 보편적인 도덕과 진리. 이 점에서 근대 서구 문화는 구체적 체험으로서 삶을 다루는 문화가 아니었다. 문화 자체가 현실적 힘들에 대한 체험을 기초로 세워지지 않고, 공상적인 힘들을 현실에서 체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세워졌다. 맑스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천상의 힘으로 지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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