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7일
출발 당일인 27일 아침, 입출국의 편의를 위해 따로 캐리어는 가져가지 않고 배낭에다 속옷과 양말, 겉옷 두어 벌, 노트북과 카메라, 전날 시내 교보문고에서 산 후쿠오카와 규슈 안내책자 등을 챙겨 넣었다. 속옷 등이 얼마나 무거울까 했으나 6일치라 부피도 꽤 되었고 무게도 상당했다. 물론 노트북과 카메라, 안내 책자 두 권의 무게가 사실은 반이 넘었겠지만.
유튜브도 좀 보고, 예전에 사두었던 책자들도 좀 훑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이 잡히지가 않았다. 후쿠오카를 비롯하여 규슈 지방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인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뜬구름만 같았다. 저수지 덕후인 나로서는 중국의 서호를 본떴다는 오호리 공원 내 저수지와, 어딘지는 모르지만 유후인에 있다는 긴린코 호수(규모는 작지만 아침 안개로 명성이 높다고) 정도만 머리에 남아 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이었는데, 아침부터 자유 시간이어서 나는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우선 예전에 한 번 들렀지만 제방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말았던 경산시 남산면의 송내지를 다시 찾아 한 바퀴를 돌았다. 둘레길이 따로 없어 저수지 왼쪽 편을 걸을 때는 물이 빠진 저수지 바닥을 좀 걷기도 했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산길도 헤쳐나가야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겸 진량읍에 들렀다가 토산지 맞은편에 한식 뷔페집이 보여서 들렀는데 규모가 엄청 크고 반찬이 정말 다양했다. 계란을 직접 프라이팬에 구워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었다. 한식 뷔페 집은 대체로 가성비가 좋고 혼자 먹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이곳은 최고의 한식 뷔페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다음 다이소에서 멀티탭을 구입하고, 안경닦이 천도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안경점에 들렀는데, 무료로 나눠주는 것은 너무 크기도 작고 해서 거금 2천 원을 주고 큰 것으로 구매했다.
여행 준비는 다 끝났지만 아직도 출발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대구공항에서 금호강변을 좀 걷기도 하다가, 차 수리를 맡길 곳을 찾기 시작했다. 며칠 전 후진을 하다가 튀어나온 뾰족한 계단 모서리에 앞범퍼가 깨어진 부분과, 올해 초에 역시 후진을 하다가 기둥에 부딪쳐 앞문이 좀 구겨진 것을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수리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일 주일 동안 차를 세워둘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수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므로 공항 근처 수리점에 차를 맡기고 여행이 끝난 다음에 찾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공항 주변에서 판금을 전문으로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0분 정도 차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급기야 정비공장으로 들어갔는데, 가격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는 시간 여유가 별로 없었다.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한 곳을 알려주었다. 30분 가까이 차를 몰고 갔더니, 연배가 지긋한 노인분은 범퍼 교환은 못한다고 했다. 출발 2시간 전까지 공항으로 오라고 했는데 출발 시간까지 2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자칫 수리를 맡기지도 못하고 떠나야 할 판이었다. 마지막 방편으로 예전에 차 수리를 한 적이 있었던 중리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정비공장이 많은 곳인데도 잘 눈에 띄지 않다가 적당한 곳이 바로 옆에 보였다. 가격은 예상보다 조금 비쌌으나 공항 부근의 정비공장보다는 상당히 싸서 적당히 타협을 한 다음 곧바로 택시를 탔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3시 50분 경. 서둘러 탑승 수속을 밟으러 들어갔더니 티웨이 항공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탑승 수속을 밟고 있었다. 여직원 한 분이 '셀프 체크 인'을 도와주면서 따로 부칠 수하물이 없다고 하자 곧바로 출국장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공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마음이 급했는데 5분 만에 탑승 수속이 끝나자 갑자기 시간이 널널해졌다. 도착해서 유심칩을 바꿀까 하다가 로밍 비용이 3만 원이 안 되어 로밍을 하기로 했다. 데이터를 3기가로 제한했는데 충분할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빈 자리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좀 하려고 하다가 출국 수속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출국장으로 갔는데, 출국 수속도 10여분 만에 끝이 났다. 그런데, 출국장 내에는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탁자가 없었고, 공용 와이파이도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서 이리저리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에는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섯 시 정도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원래 내 자리는 창가 좌석이었는데,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비행이라 같은 열에 있는 그 사람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는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활주로를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 새 허공이었다. 금속으로 된 비행기가 수백 명의 승객과 수하물을 싣고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은 언제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금속에도 하늘로 솟구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는 지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물 한 모금 나오지 않는 비행이라 나는 수첩을 꺼내 휴대폰에 저장해 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옮겨 적어 보았다. 대학교에서 일본어를 한 학기 들었지만 지금은 가타가나는 말할 것도 없고 히라가나도 읽을 수 있는 것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언어 장벽이 이번 여행에 어떻게 작용할지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까 벌써 비행기는 후쿠오카로 들어서고 있었다. 비행기가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한 시각은 6시 5분, 출발하고 정확히 45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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