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바로 앞에 있는 기온 역으로 가 오호리 공원으로 향했다. 네 역밖에 안 되는 데에도 요금이 그전 역과 차이가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210엔에서 260엔으로. 며칠 뒤 시내버스를 탔을 때도 거리에 따른 요금 차이가 운전석 위의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우리보다 요금 책정에 세분화가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시내를 좀 돌아다녔으니(?) 방향감각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자신감에 들어오는 열차를 집어탔는데, 타고 보니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였다. 이러한 혼란은 이 도시가 낯선 것과 더불어 우리와 반대인 좌측통행에서 기인하는 듯했다. 우리의 경우에는 우측통행이 대원칙이긴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철도와 지하철 1호선은 좌측통행이라, 익숙해져서 그렇지 사실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라고 노래로까지 배웠건만 이제는 사람들도 오른쪽 길로 가는 걸로 바뀌었다.
실수를 알아차린 나는 다음 역인 하카타 역에서 내려 반대편에서 오는 열차를 탔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엔 규슈에 7개의 현이 있다는 것(현이라는 개념도 잘 와닿지 않았는데, 대략 우리의 도에 해당하지만 그 크기는 우리나라 도의 반 정도였다), 규슈의 크기는 경상도 전체 크기와 비슷하다는 것(실제로 자세히 조사를 해보니 경상도 전체에다 전라남도를 합친 크기), 후쿠오카 현의 인구는 5백만이 넘는다는 것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정작 후쿠오카 시의 인구는 모르고 있었는데, 중심가의 번화함, 즐비한 대형 호텔 등으로 나는 실제보다 훨씬 대도시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지하철 노선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것만 보아도 상상하는 것만큼 대도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인구는 163만 명으로 내가 살고 있는 대구보다도 작았고, 면적은 대구의 5분의 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심가는 대구보다도 훨씬 번화했고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 활기가 넘쳤다).
출구로 나오자 난감하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에도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나와보니 길이 젖어 있었다. 운 좋게 비를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비와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길 건너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까 하다가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출구 오른쪽에는 피부가 다소 검은 것이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20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난간에 앉아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계 소리로 미루어 짐작컨대 프로야구를 시청하고 있는 듯했다. 비 내리는 거리를 별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다행히도 이내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공원은 출구에서 5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아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공원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밤인데다가 호수 중앙에 위치한 섬으로 호수가 양분되어 있어서 크기가 잘 와닿지 않았다. 짙푸른 색깔의 조명으로 밝힌 숲과 호수 주변 빌딩들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약간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나는 오른쪽 방향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있더니만 "이건 여행이 아니야"라고 한국말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이 여행을 온 모양인데, 십대 후반 정도인 딸의 투정이었다.
호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중국의 서호를 본 떠 중간에 세 개의 섬을 만들고 이것을 네 개의 다리로 이어 두 개의 호수처럼 분할된 느낌이었다. 호수를 양분하는 다리가 있을 때는 호수를 한 바퀴 다 돌려면 불가피하게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을 수 없는데, 이곳은 중간에 섬들이 있어서 갈 때는 왼쪽편을 중심으로, 돌아올 때는 반대편을 구경하면서 오노라니 중복되는 느낌이 덜했다.
시쓰키하시 다리를 다시 건너 호수 둘레를 따라 나머지 반을 천천히 돌았다.
오호리 공원을 소개하는 안내문을 거의 한 바퀴를 다 돈 지점에서 발견했다. 글을 쓰면서 안내문을 다시 읽어보니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영어 번역에 비해 번역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케이초 년간, 구로다 나가마사가 후쿠오카 성을 축성할 때, 하카타만의 이리에이었던 이 땅을 바깥 해자로서 이용하고, 1927년에 여기에서 열린, 동아권업박람회를 기회로 조원 공사를 하고, 1929년 현영 오호리 공원으로서 개원되었습니다. 총면적이 약 40만 ㎡ 있어, 그 중 21만 ㎡의 연못을 소유한 전국유수의 물경공원입니다. 공원 안에는 대규모 다도회 행사가 가능한 일본 정원, 객석 수 562석을 보유한 능악당, 들새가 안심하고 쉬어갈 수 있는 야생 조류의 숲 등 다양한 시설이 있습니다.
적당한 한국어를 몰라 일본어를 그대로 쓰거나(이리에 - 入江,후미, inlet),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으며(현영, 조원 공사, 물경공원), 거기다 '총면적이 약 40만 ㎡ 있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리고 22만 ㎡가 21만 ㎡로 된 것은 부주의로 발생한 실수로 보인다. 일본어(독해가 잘 되지 않지만)와 영어 번역을 참조하여 좀 더 정확하게 옮겨본다.
케이초 시기(1596 - 1615) 구로다 나가마사 번주(다이묘)가 후쿠오카 성을 조성할 때, 하카타 만의 후미였던 이 지역은 바깥 해자 역할을 했습니다. 1927년 이곳에서 개최된 동아권업 박람회를 계기로 조경 공사를 하고, 1929년에는 현이 관리하는 오호리 공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총면적은 대략 40만 ㎡이며, 그 중 호수가 차지하는 면적은 22만 ㎡입니다. 오호리 공원은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빼어난 수변 공원으로, 공원 안에는 대규모 다도 행사가 열리는 일본식 정원, 562석 규모의 능악당(일본의 전통적인 예능인 노와 교겐을 공연하는 곳), 야생 조류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야생 조류 숲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호리치(대호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내 나름의 소개문도 써보았다.
오호리치(大濠池)는 하카타 만의 일부이자 후쿠오카 성의 해자 역할을 하던 것을, 1927년 중국의 서호(西湖)를 본 떠 호수로 조성했다고 한다. 수 면적은 22헥타르이며 둘레는 대략 2킬로미터 정도이다. 오호(大濠)라는 이름이 '큰 해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이 호수의 유래를 쉽게 알 수 있다. 1929년에 이 호수를 중심으로 오호리 공원을 정식 개원했다. 호수는 전체적으로 타원형 모양이며, 호수 중앙에 위치한 세 개의 작은 섬과 이들을 잇는 다리로 인해, 호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인상을 준다. 오호리 공원은 후쿠오카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공원 내에는 일본식 정원,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공원 인근에는 후쿠오카 성터와 벚꽃으로 유명한 니시 공원도 있다.
3,4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였으나 사진을 찍으면서 다리를 두 번이나 왕복하느라 한 시간 이상 걸렸다. 놀랄 정도로 매력적인 것도,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지만, 숲을 비추는 푸른 조명과 주변 빌딩에서 나오는 불빛 등이 어우러져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었다(밤에 보아서 인지 상당히 크게 느껴졌는데, 안내문에 나온 대로 면적이 22헥타르라고 한다면 이날 아침에 들렀던 송내지와 엇비슷하고, 대구의 명소인 수성못보다는 조금 작다). 호수 중앙에 있는 섬들과 섬을 잇는 다리들도 괜찮았고, 특히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새들이 인상적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작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어서, 일본어 자막으로 좀 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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