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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일본 규슈 여행

일본 규슈, 나 홀로 6박 7일(5) - 후쿠오카, 하카타 구 시가지(20231028)

by 길철현 2023. 11. 16.

- 10월 28일
 
주변의 소음이 조금씩 커지고 약간 춥기도 해서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7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방송을 화면과 한자에 의지해 조금 보다가, BBC로 채널을 돌리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교전 상황을 방송하고 있었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 그것도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이른 시점에서 발발한 이번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거나 부상당하는 민간인 희생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해방 이후의 혼란과 625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해야 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진이나 홍수, 또는 역병 등의 자연재해에다 전쟁이나 정권의 무자비한 칼날 아래, 거기다 각종 사건 사고로 죽어간 사람들을 돌이켜보니, 육십 해 가까이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이 아파 호텔과의 인연은 2017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휴를 맞아 혼자 4박 5일 간의 일본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는데,  내 한 몸 잘 곳이 없으랴 하고는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첫날 도쿄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기차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하코네라는 유명 관광지에 갔다. 저녁이 되어 숙박할 곳을 찾아보았는데, 하필 이때가 일본도 연휴여서 호텔마다 빈 방이 없었다(이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도쿄로 돌아오다가, 소도시에 가면 숙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름 짱구를 굴려 오다와라 시라는 곳에서 내려서 또 숙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호텔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고, 겨우 찾아낸 곳에서도 빈 방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우리나라의 인천과 비슷하다는 요코하마에서도 시도를 해보았지만 계속 실패를 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도 다 되어 아예 쓸모가 없게 되고 말았다. 노숙을 하는 수밖에 없는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도쿄의 어느 역에선가 내려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눈에 들어온 이 아파 호텔의 문을 두드린 것인데 정말 요행으로 더블룸을 하나 배정받을 수 있었다. 

구글 사진. 이 때 묵었던 아파 호텔 시나가와 센가쿠지 에키마에 점. 당시에 아무런 기록도 남겨두지 않은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몇 자 적어둔 것이 있다. 이 당시 나는 시나가와 역에서 내려 센가쿠지 역 쪽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이날 숙소를 찾느라 너무나도 고생을 해서 숙박비가 꽤 비쌌음에도 4일치를 한꺼번에 예약을 하고 말았다. 이 호텔은 우리말로 발음할 때 우스꽝스러워(APA는 Always Pleasant Amenities의 약자) 잊히지가 않는데, 방안에 비치된 책자는 무슨 말인지는 잘 몰라도 다소 우익적인 냄새가 나서 약간 의아해하기도 했다. 이번에 올 때에도 싼 호텔을 찾아(그래도 상당히 비쌌지만) 이곳에 투숙을 했다가 예전에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좀 더 조사를 해보니 일본 국내에 수백 개의 아파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아파 그룹의 회장이 극우 인사로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위안부를 고급매춘부라고 매도하고, 난징 학살을 부인하는 책을 발행해 호텔 방마다 비치를 해두기도 했다는 것이다(이번에 갔을 때는 보지 못했다).  
 
아파 호텔은 처음에는 고마운 존재로 다가왔지만 그 실상은 씁쓸했다. 주변을 좀 돌아보고 체크 아웃을 할까 하다가 체크 아웃 시간이 10시로 빨라서 아예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어젯밤 들어오는 길에 본 기온 역의 물품 보관함에 배낭을 넣어두고 역 주변의 '하타카 구 시가지' 구경을 시작했다. 하카타 구 시가지는 중세 시기(12-16세기)에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곳으로 사찰과 사원 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조텐지(승천사)였다. 안내문을 보니 1242년 이 절을 건립한 쇼이치 국사는 중국 송나라로부터 우동, 메밀국수, 만두 등을 들여온 것으로 유명했다.

 
별생각 없이 입구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들어섰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다시 이 사진을 살펴보니 현판에 사천사(賜天寺)라고 적혀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구글 지도에도 사천사불전(賜天寺仏殿)은 나오는데 정작 사천사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사소한 미스터리가 내 신경을 자극해 인터넷을 붙들고 늘어졌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가로대에 가려진 현판의 윗부분을 찍은 사진을 찾으면서 의문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었다. 일본어 위키피디어를 보니 이 사찰의 정식 명칭이 '만송산칙사승천선사'(萬松山敕賜承天禪寺)이고 현판의 글자도 세로로 두 자씩 읽으면 '칙사승천선사'이다. 물론 현판의 첫 글자는 勅(칙)자를 잘못 쓴 것인지 아니면 지금은 쓰지 않는 옛날 표기 방식인지, 또 위키피디어에  勅(칙)이 아니라 敕(수)를 쓴 것도 오기인지는 불분명하다[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우운국이라는 분이 이 절을 '칙사선사'(勅賜禪寺)라고 불렀기 때문인데 이 분의 글이 믿을만한 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사실 하나에 휘말려 글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이 현판에 나오는 사천사라는 명칭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곳이 승천사라는 사실이다. 중간의 도로로 인해 이 절이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혼란에 일조를 한다. 이렇게 헤맬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지식의 부재 때문이지만 자칫 실수를 해서 사람들을 오류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는 일말의 책임감도. 유뷰브를 보다 보니 누군가가 이 조텐지를 소개한다고 해놓고는 부근에 있는 쇼후쿠지(성복사)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
종루의 모습은 우리의 종각과 많이 다르다. 이 종루에 있는 동종은 고려의 종인데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이 절의 본당에 해당하는 각황전
이 절의 불상의 규모는 자그마하다.
다선공양탑. 다선은 가루 차가 잘 섞이도록 젓는 도구. 이것 또한 송나라로부터 들여온 듯.

 

출입을 막아 녹은 이 문 안쪽에 보이는 것이 조텐지의 또 다른 명물인 모래정원이다. 돌과 모래(혹은 쇄석)로 만드는 모래정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 특유의 정원 양식이라고. 이곳을 찾을 당시에는 이 정원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거리가 멀어 사진을 찍으면서도 문 안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
쇼이치 국사가 우동, 메밀국수, 만두 등을 들여온 것을 기념하는 비석들. 한국인인 나에게는 별로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조텐지를 나와 이 거리의 입구에 문이 하나 보여 가보았다. '박다천년'이라고 써져 있는 이 문은 2014년에 전통적인 양식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아직 이른 시간(아홉 시경)이라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 외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일본의 거리들은 대체로 깨끗하지만 이곳은 특히 정갈했다.

 

 
 

 

조텐지 옆의 '천여암'이라는 작은 절에도 들어가 보았다. 절 너머로 안쪽으로 묘지에 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보여 사찰들보다 그곳이 더욱 궁금해져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길을 따라 돌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에도 우리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일본의 묘지들이 나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했다.

참배객들

 

천여암은 절보다도 납골당 건물이 훨씬 거대했다.
미카사 강, 물이 가득한 걸 보니 이곳이 바다에서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녹슨 주차금지 경고문이 흥미로웠다.

 
마카사 강 옆의 소로를 따라 돌며 묘지의 입구를 살펴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신사가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와카하치만구 신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는데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혹시 이곳이 묘지로 이어지는가 하고  잠시 들어갔다가 금방 나오고 말았다. 

 

이 술집은 현금만 받는다고.

 

일본 사찰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대동소이해 사찰 탐방은 이 정도로 중단했는데, 인터넷을 보니 도초지(동장사, 東長寺)는 하타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높이가 10.8m로 일본 최대인 목조 불상이 있다고 하니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터넷

 

길을 건너 주변 지역을 좀 더 걸어가다 보니 작은 공원이 하나 나왔다. 예전에 하카타 역이 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 하카타 역이 있던 이 곳의 이름은 데키마치 공원이었다.
규슈 지역 철도의 발상지라는 표지도 보인다.

 

시가지 탐방은 일차적으로 일단 이 정도 마치기로 하고 오호리 공원의 낮 풍경은 어떠한지 보러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