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일본 규슈 여행

일본 규슈, 나 홀로 6박 7일(3) - 후쿠오카, 걸어서 하카타 역에서 기온 역으로 (20231027)

by 길철현 2023. 11. 11.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향하다가 창밖을 보니 내가 타고 온 티웨이 항공기가 보였다. 공항 내 안내문에는 일본어와 중국어 외에 영어와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언어로 인한 혼란은 없을 듯했다. 입국 수속을 하는 직원들도 '안경을 벗어 주세요'라고 한국어로 또렷하게 말해서 내가 한국에 들어온 것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입국 수속도 아무런 문제 없이 금방 끝이 났다. 

 

수하물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에 서둘러 공항 로비로 빠져나온 나는 마침 관광안내소가 눈에 띄어 각 지역 홍보용 팸플릿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챙겼다(그런데, 나중에 하나도 참조하진 않았구나). 그리고, 그 옆 버스 매표소 직원에게 하카타 역 행 버스표를 구입하려 했더니 왼쪽에 있는 기계를 이용하라고 했다.  

공항에서 하카타 역까지 270엔(2430원)

 

공항 밖으로 나오니 한 곳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는 것이 후쿠오카 중심지인 하카타 역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소가 분명했다. 줄을 서자 말자 이내 버스가 들어왔고 어디선가 하카타라는 말이 들려서 망설임 없이 차에 올랐다. 수하물을 따로 찾지 않고 버스에 올랐기 때문에 버스 승객들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아닐 텐데도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듯 엔저 현상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자와 일본어가 섞인 네온사인들을 보면서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퇴근 시간과 맞물려서 차가 상당히 밀렸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좀 읽어보려 했으나 몇 자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무슨 글자지, 생각은 분주한데 차는 벌써 지나치기 일쑤였다. 바쁠 것 없는 여행객인 데다 처음 오는 도시이다 보니 바깥 광경을 보는 데에는 차가 천천히 가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책자에서 읽은 대로 후쿠오카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거리가 매우 가까워 차가 밀렸음에도 20분 정도만에 목적지인 하카타 역(정확히 말하자면 하카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가 숙소로 잡은 '아파 호텔 하카타 기온 에키마에(에키마에는 역전)'는 하카타 지하철 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기온 역 바로 앞에 있었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호기롭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왔으니까, 좀 더 서쪽으로 가면 되겠지 하고 무턱대고 좀 걸어 나가다가(일단 무작정 좀 걷고 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던가?) 이내 너무 무모한 시도라는 걸 깨달았다. 구글 지도를 꺼내 길 찾기를 했는데 감이 오지 않아 횡단보도에서 자전거를 탄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에게 길을 물었다. 이때 신호가 바뀌어 나는 그 친구에게 일단 길을 건너자고 한 다음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그가 아파 호텔을 알리는 없었고 내가 '기온'이라고 하자 그 말은 그가 알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서툰 영어로 방향을 설명해 주었는데 대충 '온 길로 돌아가서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인 듯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니시테츠 호텔 크룸 하카타. 오른쪽이 길을 물은 횡단보도. 통로 입구엔 한자로 '박다(하카타)역동통로'라고 적혀 있다.

 

구글 지도를 따라 아파 호텔로 가는데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방향을 확인하고는 어느 정도 걸어가다가 다시 지도를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시간이 늘어나는 형국이었다. 제대로 갔다면 20분 안에 도착할 거리였으나,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사진을 찍어 둔 곳을 확인해 보니 직선거리로 가지 못하고 대략 반원 모양으로 빙 두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낭이 좀 무겁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헤매는 걸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코 인(동횡인 イン = 인, 틈새 일본어 공부). 토요코 인은 아파 호텔과 마찬가지로 비지니스 호텔 체인이다.
하타카 버스터미널(バスターミナル = 바수타 - 미나루). 저 안쪽 기둥 안 통로 어딘가에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다시 길 건너편에서 되돌아가는 형국. 버스가 정류장에 차를 대기 위해 어디선가 돌았군.
하카타 역
메이지공원(명치공원).
니시테츠 호텔 크룸 하카타 기온. 이 호텔은 다른 노선인 쿠시다진자마에 역 앞에 있다. 걷다보니 여기까지.
이 뒷골목은 또 어디인지?
만교지 절(만행사)

 

호텔의 젊은 여직원은 꽤 능숙한 영어로 나를 맞이했고 체크인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카드키를 주면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한 번 접촉을 해야 한다고 말한 다음, "Inside again"이라고 해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고 있었다. 직원이 설명에 부담을 느꼈는지 "직접 알려주겠다"라고 했는데, 그제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번 더 접촉을 하라는 말이라는 것이 형광등처럼 떠올랐다. 방은 정말로 아담한 사이즈였는데 그래도 욕조가 있는 것이 놀라웠다(욕조를 대부분 없애 버린 우리나라의 모텔이나 호텔과는 달리 일본의 호텔은 가격대와 상관없이 욕조는 꼭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방 사이즈에는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큰 텔레비전도 마음에 들었다.

아파 호텔. 첫 일본 여행 때에도 이 호텔에서 잤는데 발음이 우스꽝스럽다.
범용 콘센트(universal outlet)가 있어서 멀티탭 어댑터가 필요 없었다. 탁자 위엔 물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고, 냉장고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작동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첫 날의 이 생수가 호텔에서 본 마지막으로 본 생수였다.
호텔 마다 발 수건이(매트용으로 사용하는 듯)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대충 짐을 풀어 놓고 카메라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후쿠오카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인 오호리 공원. 저수지 덕후인 나에게 후쿠오카 소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이 공원의 저수지였고, 우선 야경을 보고 싶었다. 8시가 다 된 시각. 12시 전에 아점을 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라 배가 출출해 일단 저녁을 먹기로 하고, 호텔로 오는 길에 본 골목에 있는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일본에서의 첫 끼니까 뭔가 근사한 것을 먹고도 싶었으나, 아는 것이 없는 데다 너무 늦어지면 알 될 것 같아 식당이라는 한자에 이끌려 이곳으로 향했다.

 

이 자그마한 식당에는 바처럼 혼자 식사를 하기 편한 긴 테이블이 있었고, 옆쪽으로는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도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분과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주문을 받으러 내 쪽으로 왔다. 일어를 못한다고 하자 그녀는 한국어 메뉴판을 내밀었다. 만만한 돈가스 덮밥에다, 아사히 병맥주를 하나 시켰는데, 동남아 인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생맥주를 들고 왔다. 뭐, 생맥주도 나쁘진 않아서 '괜찮다'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니와 종업원 사이의 약간의 긴장, 그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일까? 돈가스는 안쪽이 완전히 데워지진 않긴 했으나 약간 짠맛이 있는 대로 순조롭게 한 끼를 때웠다. 미소된장국도 입맛에 맞았다. 계산은 시험 삼아 카드로 해보았는데 이것도 순조로웠다. 1370엔(12300원). 식사에다 맥주까지 곁들인 가격이니 착한 편이었다. 소액인데도 전표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엽(二葉)은 떡잎이라는 뜻. そば = 소바, 메밀, うどん = 우돈, 우동, 가락국수, 丼物 = どんぶりもの = 돈부리모노, 덮밥 / 居酒屋 = いざかや = 이자카야, 선술집, 술집. 여행 당시에는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는데, 여행기를 쓰면서 글자들을 찾아 읽어보니 익숙한 것들이다. 특히 여행을 하면서 거주옥이라는 붉은 등을 달고 있는 곳을 많이 보면서 술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만땅으로 차올랐다. 거주옥이 바로 이자카야라는 걸 알고나니 다소 허탈하기까지 하다.
돈가스 덮밥에 미소된장국, 거기다 생맥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