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전
2006년 8월 마흔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당시 상하이에 거주하고 있던 막내동생네를 찾은 것이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 일찍 잠에서 깨어 동생네 아파트 단지 주변을 혼자 걷던 때의 두근거리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편의점에 들러 껌이며 과자를 사고 다소 고액권을 내밀자, 점원이 중국말로 금액이 표시된 화면을 가리키며 뭐라고 했는데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던 것도. 짐작컨대 잔돈이 없느냐는 말이었겠지만 어차피 잔돈이 없었던 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점원은 또 뭐라고 하면서 잔돈을 내주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답답함, 말이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말이 통한다면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하는 생각.
10년 뒤, 이번에는 멀리 영국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 외국 여행을 떠났다.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므로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익숙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영국의 문화와 생활 습관은 정말 낯선 것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돌이켜보면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운전은 위험하고 힘들었던 만큼 또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좌측 통행을 한다는 것,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는 사실이 20년의 운전 경력을 쌩초보로 만든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2주간 정도의 여행은 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되었고, 늦은 나이었지만 여행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19년 대만 여행까지 몇 번의 해외여행 모두 제대로 기록하고 정리하지 못했다(영국 여행의 경우는 여행 당시에 어느 정도 정리를 해두긴 했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적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현재 내 생활의 큰 부분인데, 국내여행보다는 낯선 것도 많고 이야기 거리도 분명 풍성할 해외여행기를 적는 것에는 왜 실패하고 만 것일까? 아마도 정리할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 앞에 시도할 엄두가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웃나라인 일본은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찾게 되었다. 도쿄 인근 지역을 돈 첫 번째 일본 여행은 기분이 너무 다운된 상태에서 이미 끊어둔 비행기표를 사장시킬 수도 없고 해서 떠난 것이라, 하코네와 니코 등 명소를 찾았음에도 전체적으로는 우울하고 답답했던 여행이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 길이 막혔고, 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다가 한 달에 한 번 일주일 정도 휴가를 얻을 때면 저수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곳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 여정의 대부분은 블로그에 올렸지만 올리지 못한 여행들도 꽤 있다. 코로나가 풀리고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5월 정도에 일본의 대마도나 후쿠오카를 한 번 갔다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쿠오카는 그곳을 다녀온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훨씬 전의 이야기이지만 이 친구의 권유로 내가 좋아하는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라는 영화를 인상깊게 보았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 처음 본 것은 "경주"였다. 그는 이 외에도 지명을 제목으로 해서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나는 그 영화들을 보고 영화의 배경이 된 곳들을 직접 찾아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도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아 있었고,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해도 해외여행에는 여러 가지 준비할 것이 많았다.
올해 봄, 여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양되어 모든 일이 순조로울 듯이 보였으나, 9월 말에 과부하를 견디다 못한 몸에 허리 근육통이 찾아오고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면서 솟구쳤던 에너지 레벨도 점차 낮아졌다. 마음이 다시 한 번 지향점을 잃고 흔들리기 전에 뭔가 변화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쉰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나에게 축하의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마음 등이 합쳐져서 다소 급작스럽게 후쿠오카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출발까지 채 일 주일이 남지 않은 비행기편이라 환율이 많이 떨어져 싸다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저비용항공사임에도 비행기 값이 꽤 비쌌다. 호텔은 예약을 안 하고 현지에 도착해서 싼 곳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지난번에 일본에 갔을 때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 갔다가 입국 심사 때 한 마디 들었고, 또 마침 그 때가 어린이날(일본도 5월 5일이 어린이 날로 공휴일이다)이 낀 성수기여서 묵을 방을 찾느라 몇 개의 도시를 전전하던 힘겹던 기억이 떠올라 역시 다소 비싼 가격으로 호텔도 예약을 했다. 처음엔 이틀을 예약할까 하다가 숙박비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 또 후쿠오카에 계속 머물지 어떨지 모른다는 생각 등으로 하루치만 예약을 했다. 그리고,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소형차를 렌트해서 돌아다니면 좋을 것 같아 국제운전면허증도 발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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