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역에 내린 다음 물품 보관함에서 배낭을 꺼내 하카 역으로 향했다. 아침에 보니 하타카 역으로 곧바로 통하는 지하통로가 있어서 거길 이용했는데, 가다 보니 통로 한쪽 여유공간에 오토바이와 자전거용 유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2017년 일본을 처음 찾았을 때 오토바이, 자전거 유료 주차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차 질서가 엉망인 것에 비해, 소도시에도 곳곳에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 질서를 철두철미하게 확립하고 있는 일본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섬뜩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규슈 여행을 위해 렌트를 한다면 주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남는 것이 시간이라 기차에 비해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하카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더니 식당만 보이고 매표소나 승차장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가 하는데, '버스터미널로 가려면 2층으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타시오'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다시 그곳이었다. 장난치나, 짜증이 올라오는 걸 참으며 안내문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니 '빨간색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쳇바퀴 돌듯 다시 2층으로 내려가서 보니 제일 안쪽의 엘리베이터의 색깔이 달랐다. 기다리는 것도 답답하고 해서 복도를 따라 중앙으로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매표소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힌 언제 나가사키 시로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후쿠오카 시는 어느 정도 보았고 나중에 더 돌아볼 수도 있으니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가사키 짬뽕으로 유명한 곳. 그러다가 나가사키가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라는 것도 어렴풋하게 떠올랐다(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에 조성된 평화공원은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 주말 오후라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다른 목적지는 어디가 좋을까, 등등으로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하지만 표도 쉽게 구했고(2900엔) 출발 시간(오후 2시 16분)도 십여 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었다. 일본의 고속버스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손님이 많으면 예비차를 배차하는지 2호차인 내 차는 앞차가 떠나자마자 출발했다.
버스는 후쿠오카 시내의 텐진 버스터미널에도 들른 다음, 시내를 빠져 나와 나가사키를 향해 달렸다.
주말이라 차가 막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통행량이 꽤 있긴 했으나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시내를 벗어나 꽤 오래 달렸는데도 도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 산세도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여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나는 안내판을 보면서 낯선 지명들을 영어로 적어나갔다. Chikushino, Kiyama, Jaru, Kinyu. 어느새 주변은 한적한 시골이었고, 산에는 군데군데 붉은 잎들이 보이기도 했으나 단풍이 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다. Saga, Yamato(大和), Ogi(小城), Takumishi, Kartsu, Taku, Takeo, Kawanobori, Ureshino, Sonoginshou, Higashisonogi, Omura, Isahaya. 한자로 당진, 서산이라는 지명도 보여 우스웠다(여담이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지명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에 나는 것은 경남 합천군의 적중면 부수리이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타고 후쿠오카 현에서 사가 현을 지나 나가사키 현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일본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오토바이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토바이 통행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차들은 대체로 추월차로를 준수하면서 달렸다. 저수지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아 강수량이 많아 저수지를 별로 조성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규슈 지방에 대규모 저수지는 없어도 저수지 숫자가 적은 편은 아니다). 태양광 발전소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하나 정도만 보았다.
나가사키 현으로 들어서면서 오른편으로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좌측통행인데다 내 좌석도 좌측이라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버스는 나가사키-타라미(長崎-多良見) 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로 들어온 버스는 쇼와마치(しょうわまち 昭和町)와, 평화공원 정류장에서 승객들을 내려준 뒤 최종 목적지인 나가사키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나는 막연하게 평화공원이 시 외곽에 있을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했는데 시 중심부에 있었다).나가사키 시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가사키 역 맞은편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의 규모는 후쿠오카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작았다. 그리고 지하철이 없고 고층빌딩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도시는 아닌 듯했으며, 전차가 다니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나가사키 시의 인구는 대략 40만 명 내외. 이 글을 쓰면서 지도를 보니 뜻밖에도 대마도[쓰시마 섬]가 나가사키 현에 속한다.).
버스에서 내린 시각은 4시 45분 정도. 2시간 반 걸린 셈이었다. 일단 숙소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적당한 규모의 호텔이 하나 있어서 들어갈까 하다,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안쪽의 오르막길을 올라가 보았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이용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 호텔이 있었다. 밖에 적어 놓은 대로 받는다면 저렴한 편이었으나 시설도 좀 열악해 보이고, 아무래도 러브호텔 같아서 돌아섰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도 그래서 처음에 보았던 호텔로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았다. 9000엔.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닌 듯해 이곳에 묵기로 했다. 카운터엔 연배가 지긋한 남자분과 여자분이 있었는데 영어를 어느 정도 했다. 또 흥미롭게도 봉사료 명목인지로 100엔을 따로 현금으로 받았다.
방은 그런대로 깔끔했으나 텔레비전도 조그맣고 냉장고엔 물도 한 병 없었다. 배낭을 내려놓은 뒤 나가사키 시내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을 겸 카메라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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