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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언어철학

마루야마 게이자부로 - 존재와 언어

by 길철현 2016. 9. 20.

*마루야마 게이자부로, 존재와 언어, 고동호, 민음사(1987) (110728) (110730)

(나는 내 생각에 따라--혹은 내 의지에 따라, 혹은 알지 못할 것의 부추김에 따라--행동을 하고 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다.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하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감상]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어는 내 지적인 관심사의 큰 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언어과학이란 무엇인가]였고, 또 이명현의 [이성과 언어]도 그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소쉬르 [일반 언어학 이론], 저자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언어 철학]도 있구나) 이명현은 명쾌한 어조로 현대 철학의 언어 이론을 1)사진 이론--러셀과 전기 비트겐슈타인, 즉 외부 세계와 언어는 같은 논리를 지니고 있다 2)게임 이론--후기 비트겐슈타인, 언어는 나름의 규칙을 지닌 게임과 같은 것이다. 3)보편성--촘스키, 인간은 원래 보편 언어를 갖고 태어난다(데카르트 적 사고)라고 규정했다. (내 나름대로 대충 정리를 해 보자면)

나의 언어관은 비트겐슈타인의 게임 이론에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니체가 언어에 대해서 말한 부분, 시각적 신호를 언어로 옮기는 것의 자의적이고 비약적인 측면에 대한 지적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방학과 함께 나는 뚜렷한 주제 없이 글을 써나가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불거졌던 것은 언어활동의 한계에 관한 것이었다. , 언어라는 것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편이고 그래서 한 방향으로 국한하는 것이라면, 또 언어활동의 밑바탕에 별다른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언어활동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보장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정도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좀 더 생각을 이끌고 나가보자면, 언어의 기반이 떠 있다고 할 때 그 위태로움을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기에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이 책은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다 정치하고 또 보다 설득력 있는 말로 풀어 보이고 있다. 그 동안 서양 철학은 계속해서, 현전의 기호학: 현전의 형이상학: 기호를 실재의 표상 내지는 대행 * 재현, 다시 말해서 원본에 대한 사본이나, 진품을 가리키는 대용품으로 간주하는 입장’(63)이었는데, 소쉬르의 언어학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생각에 근본적인 변혁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는 실재의 표상이 아니라, <언어가 세상을 생성해나가는 면>이 더욱 강조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아직 많은 생각을 해나가야 할 부분이기는 하다.) 보통 우리는 언어와 세상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그것은 여러모로 편리하기도 하고, 또 우리의 사고는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언어 밖의 세상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또 다소 극단적으로 생각을 밀고 나가자면, 언어뿐인지도 모르겠다(이것은 좀 심한 말이다.) (예전에 박이문은 [존재와 인식]에서 이것을 두 차원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했는데, 이것 역시도 현전의 기호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 깨닫는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나의 생각은 박이문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또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아니 박이문의 말은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전에 적은 글을 한 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심층 언어를 지칭하는 랑가주라는 개념인데, 이 부분은 인간의 무의식과 관련지어서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름대로 드는 생각은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물론 그것은 항상 타인과의 타협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과 함께,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인간 정신이고, 언어가 나이다. 그렇다면, 나를 풍요롭게 해야 할 것이다. (언어에 대한 나의 생각에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개념 정리>

1. 랑가주

2. 심신 구분 구조/ 언어 구분 구조

3. ousia <실체>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지금 여기에 있는 부동산, 자산.

4. nomos <노모스> 문화(인위/제도) 자연에 대비되는 것.

5. 엔텔레케이아 완전태. 목적이 실현되어 운동이 완결된 상태.

6. 알레테이아: 역동적인 교체

7. ouroboros 오우로보로스

8. 현전의 기호학

9. 하이데거 [언어로 가는 길 위에서]

10. 플라톤 [크라틸로스] / 성서

11. 이즈쓰 도시히코 [의미의 깊이로] 이 책 구입( [의미의 깊이]) 민음사

11. 호모 파베르/ 호모 사피엔스/ 호모 로퀜스

12. 푸코 [말과 사물]

13. 소쉬르, 아나그람

14. 훔볼트 [카비어 연구 서설]

 

<서장: 신들의 죽음>

<1> 실체론 비판

-<문화 현상은 모두 페티시이며, 말이 페티시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인데, 그 페티시와 대치되는 <진품> 같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하여 우리의 의식을 비울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수렴. (56)

 

<2> 존재와 언어

-현전의 기호학: 현전의 형이상학: 기호를 실재의 표상 내지는 대행 * 재현, 다시 말해서 원본에 대한 사본이나, 진품을 가리키는 대용품으로 간주하는 입장. (63)

-이즈쓰 도시히코: 언어 의식의 심층 영역에는 기존의 의미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시각각 새로운 세계가 거기에 전개된다. (78)

-교감(communion)/ 전달(communication) (80)

- <모든 현실은 말이 만들어가는 기호공간으로서의 텍스트>이며, 이러한 현실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 이어서 <존재 자체가 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확대되어 갔음에 틀림없다.(82)

 

- 언어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이전에 의미론적으로 하나의 <현실>을 분절하는 시스템이다. 자연 그대로의 존재 카오스 위에 던져진 언어 기호라는 틀. ---- <세계>는 언어 기회의 개입에 의해 의미를 갖도록 구조화된 <자연>이 변한 모습이며, 의미를 갖도록 분절된 사물*사상(事象)의 전체이다. (82)

-대상이나 의미의 자기 동일성이 있기 때문에 반복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낱말의 반복 가능성 때문에 대상이나 의미의 자기 동일성이라는 착각이 생기는 것이다. (83)

-<말에 의해 세계가 분절되고, 사물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85)

-아나그람이라는 것은, 기호의 지배를 받는 논리와는 다른, 텍스트의 논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 (122)

-정신 분석학, 특히 라캉파의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의식의 심층에서 시니피앙이 매개하여 일어나는 연합의 정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시니피에에서 분리된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을 뽑아내기도 하고 다른 시니피앙과 연결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니피에, 시니피앙 중 어느 쪽이 매개하든, 거기에서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은 항상 양자를 분리할 수 없는 기호이다. (136)

 

4. 유언론 비판

-Boas-Sapir-Whorf 가설: 언어 상대주의 --인간의 세계관은 사용하는 언어 구조에 지배된다. (이 이야기도 현전의 기호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141-42)

-중관파/ 유식론/진언밀교

 

5. 인간 존재와 이중 분절 구조

-우리에게는 <의미-현상> 이외의 사상은 지각되지 않고 분절된 가지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59)

- <삶에 대한 관여성> (159)

- <심신 구분 구조> / <이중 분절 구조>

-메를로퐁티: 말은 우리라는 실존이 자연적 존재를 초과하고 있는, 그 과잉 부분이다. (168)

-동물의 식욕과 성욕이 각각 심신 구분에 의한, 먹는 것과 성에 의한 생리적인 욕구임에 비해서, 인간의 그것은 언어 구분에 의한, 먹는 것과 성에 대한 문화적인 욕구. (171)

-<언어 구분 구조><심신 구분 구조> 위에 실체적으로 겹쳐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 존재는 단지 <언어 구분된 심신>이므로, 원리적 존재로서 세운 <심신 구분 구조>는 항상 이미 변형되고 파탄되고 있다. (181) (이 말은 인간은 모두 상징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말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6.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말

 

7. 파라그라마티즘

-시작법으로서의 음의 아나그람 현상. (208)

-파라그라마티즘: 바흐친의 대화 이론/ 크리스테바 <텍스트의 상호성>

-심층 의식에서는 코기토적인 주체가 말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은 작자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차례차례 스스로의 증식 작용을 반복한다. (218)

 

8. 페티시즘과 <영원 회귀>

-인간의 일생은 심신이 언어에 의해 훼손되는 역사인데, 심신이 언어 구분될 때 갈라진 곳은 점점 벌어져 카오스가 증대하며, 우리는 그 카오스를 다시 언어 구분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 구분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카오스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다시 언어 구분하는 쾌락으로 산다. (234)

-문화에서는 원본/사본이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단지 사본이 사본을 뽑아내는 자기 증식이고 <베일이란 그 뒤에 얼굴이 없다는 것을 감추는 것>이다.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