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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유무 (I)

by 길철현 2024. 1. 28.

유무 (I)

             김광규

 

염료상 붉은 벽돌집

봄비에 젖어

색상표에도 없는 낯설은 색깔을 낸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은 이 색깔

지붕에 벽에 잠시 머물다

슬며시 그 집을 떠난다

 

보일 듯 잡힐 듯 그 색깔 따라

눈이 좋은 비둘기는

종악이 울리는

아지랭이 속으로 날아간다

 

날다 지쳐 마침내 되돌아온 비둘기

옆집 TV안테나 위에 앉아

염료가 지저분한 벽돌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김광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지. 1979(198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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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는 짚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색상표에도 없는 낯설은 색깔'이라는 표현이 시선을 끌면서 동시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잘 포착되지 않는, 그렇지만 우리를 사로잡는, 그래서 '눈이 좋은 비둘기'는 그 '색깔 따라' '날아간' 것이다. 하지만 '지저분'한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리라. 일단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