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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법원

by 길철현 2024. 1. 28.

법원 

            김광규

 

지루하게 긴 생애를 살아

허리굽은 노인이

종교를 믿지 않고

법원으로 간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사무실마다

쌓여있는 기록과 법령집들

미온지와 도장과 재떨이 사이에 

법이 있으리라 믿으며

억울한 노인은 지팡이를 끌고

아득히 긴 회랑을 헤맨다

 

법을 끝내 찾지 못하고

어두운 현관문을 나서며

노인은 드디어 깨닫는다

법원은 하나의 건물이라고

검사실과 판사실과 법정뿐만 아니라

구내식당 다방 이발소 양복점이 있고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법원은 호텔처럼 커다란 건물이라고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지.1979(1989).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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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떠올리게도 한다. 법이 과연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꼬집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