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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유종호 - 시와 의식화 : 김광규의 시세계. "반달곰에게". 민음사. 1981. 평문.

by 길철현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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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의 시가 '일상생활의 제상'을 제시하는 가운데, 우리를 왜소화시키는 비인간적인 힘을 부각함으로써, 사회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글. 작품들에 대한 세부 분석이 돋보인다.  

 

- 발췌

18) 흔히 소설의 전문영역이라고 지목되어 온 평범한 일상생활의 제상이 김광규의 시세계에서처럼 남김없이 포착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26) 생활세계의 전체적 구조와 그 구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간 왜소화 및 자아상실의 과정을 세세한 결로 다루고 있는 김광규의 시세계가 꾸준히 상기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필경엔 비개인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 우리는 앞에서 김광규 시가 다루고 있는 자기상실과 왜소화과정에 되풀이 주목한 바 있다. 그것은 한심스러운 것으로 파악되어 있고 개탄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피동적이며 방관적인 개탄이나 탄식으로 그쳐 있지 않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을 형성하며 조종하고 있는 생활세계의 여러 제도와 조직과 이념에 대한 폭발적이고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이 깨달음은 자기소외와 자기상실을 넘어서는 가치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32) 사회적 감정이 도덕적 비젼 속에 동원되어 있는 김광규의 시는 사적 감정의 배타적 조직이 서정시의 전문영역이라는 통념에 도전하고 있는 최근 우리 시의 주목할 만한 새 성취이다. 독자들은 그의 친숙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시를 읽으면서 자기발견의 슬픔과 함께 의식화과정 한복판에 서 있다는 즐거움을 아울러 느낄 것이다. 사회시의 새 영역을 뚫어 놓은 그의 시가 보다 밀도 잇는 단순성으로 농축되어 우리 시대 최선의 시적 선율의 하나로 완성되기를 모든 독자들은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