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김광규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무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
고 이미 낯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김광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지. 197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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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현실, 그 현실을 감정을 절제한 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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