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은 이 평문을 통해 김광규의 시가 언어적 명징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에 대한 관찰, 삶에 대한 반성, 정치와 역사에 대한 고찰들'이 지혜를 담고 있음을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시에 '따분하고 상투적인 부분들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 서술'과 '지적인 통제' 등이 김광규의 '시적 문체의 특징'이며 그의 문체는 한국시의 주된 흐름에 대해 '반대 명제를 제시'하고 있음도 말하고 있다.
김광규의 시가 우리 시를 더욱 풍부하게 한 면도 있지만 그의 산문적인 시가 항상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따분하고 상투적'이라는 점은 그의 시를 읽을 때 가끔씩 느끼게 되는 것이라 더욱 와 닿는다.
- 발췌
117) 그것이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구획선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작은 구획선이 될 것인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김광규씨의 시가 일단의 구획선 또는 분계선의 한 획을 이룰 것임은 확실한 일이 아닌가 한다.
- 우리 시의 문체는 한편으로 간헐적 단편성, 불완전한 또는 비문법적 문장, 무맥락의 도약 등을 특징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감상적 유려함, 격앙된 스타카토, 또는 고양된 격조의 음악성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김광규씨의 시는 이러한 한국시에 대하여 하나의 반대 명제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는 거의 산문에 가깝다.
118) 객관적 서술, 이 서술을 위한 거리의 유지, 이러한 조작에 필요한 지적 통제--이러한 것들은 김광규씨의 시적 문체의 특징이 된다.
119) 감정이나 직관보다는 머리에 의존.
120) 시는, 근원적인 정의를 시도한다면, 감정의 언어라기보다는 정돈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에서 감정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명징화에도 단순한 두뇌의 명징성이 있고 또 전인적인--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이기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명징화가 있으며 이 전인적 명징성은 균형잡힌 감정 상태에 크게 관계되기 때문이다.
121) 그의 시의 효과는 어두운 세계와 초연하고 객관적인 태도, 두 사이에 생기는 기묘한 마찰에서 나온다.
127) 오늘의 삶의 중요성,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그것이 우울한 것일망정, 그 삶의 진귀함을 알고 사는 일의 중요성은 김광규씨의 인생론의, 현실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는지 몰라도 적어도 논리적 중심에 놓여 있는 신념이다.
132) 김광규씨의 시대에 대한 관찰, 삶에 대한 반성, 정치와 역사에 대한 고찰들은, 우리가 거기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귀기울여 마땅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단순하지 않은 복합적인 탐색의 소산이다. 그러나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혜와 탐색이 명징한 문장, 간결한 형태 속에 담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명징성은 고전적 조소성을 지향하는 모든 언어의 기본적 조건이다. 이것은 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는 이 기본 조건 위에서 그것이 허용하는 감정과 음악(이 양자 다 김광규씨의 시에 들어 있다)을 지향한다. 물론 이러한 감정과 음악이 늘 성공적으로 구현된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김광규씨의 시에 따분하고 상투적인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지적인 통제가 결여되는 경우는 드물다. 시는 마술의 표면을 가지면서 그 깊이에 있어서는 우리를 밝은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이 깨달음은 단순히 지적인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것이어서 마땅하다. 이것은 감정과 감동을 포함한다.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론적 납득이 아니라 인격적 설득, 더 나아가 인격적 변화이다. 그러나 이것이 상투적 감정의 과장과 혼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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