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 울 날
김광규
언젠가 한번 그와 함께
밤새워 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었다
그러나 통행 금지가 폐지되기
1년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한 발짝 앞서
통금이 없는 나라로
가 버린 것이다
눈보라치던 그날
제주가 얼어 붙는 추위에 떨며
우리들은 서둘러 땅을 파고
깊숙이 그의 관을 묻었다
평토제가 끝나자 저마다
수건을 하났기 받아가지고
산지기네 집으로 내려갔다
청솔가지를 땐 사랑방에 모여
술마시며 떠들어 대고
밤에는 놀음판을 벌였다
양지바른 언덕에 일찍부터
묘자리를 잡아놓고
천기를 누설할까봐
잠자코 있었던 그는
살았을 적에도 별로
우리들을 기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은 이의 가벼운
미소를 생각하니
슬픔은 언제나 살아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는 것 같다
김광규.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문지. 1983(1986).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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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죽음을 회상하며 슬픔을 직정적으로 토로하고 있지는 않지만 슬픔이 배어나오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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