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에서
김광규
이 채석장은 자리를 잘 잡았다.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바위로 된 돌산을 벌써 20년째 깎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릴 때마다 근처 일대의 지반이 온통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저 둘산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
는지 도저히 헤아릴 바가 없다.
돌을 캐냄에 따라 채석장은 이제 덤프트럭 10대가 한꺼번
에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어졌고, 돌산의 깎여진 면적도 높
다랗게 드러났다. 바위의 속을 보여 주는 이 단면은 밤중에
도 허옇게 빛을 낸다.
여기서 캐낸 돌은 그만한 그림자를 허공에 남기고, 모양에
따라 석재로 다듬어져서 팔려 가거나, 골재로 가공되어 곳곳
으로 실려 간다. 그리하여 바위다운 모습을 완전히 잃고, 마
침내 돌이 아닌 무엇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채석장의 허연 바위와 돌들이 아무래도 내게는 커다란 뼈
처럼 보인다. 바위와 돌이 오랜 세월에 걸쳐 채석되고 또는
풍화되어 디딤돌이나 자갈, 혹은 모래로 바뀌고 끝내는 팔고
사는 물건이 되듯, 영혼의 뼈도 자디잘게 부서지며 닳아 버려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채석장이 커질수록 인부들은 작아져서 보이지 않고, 바위
를 뚫는 착암기 소리만 더욱 요란해진다.
김광규. "크낙산의 마음". 문지. 1983.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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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는 가운데, 인간 또한 원래의 본성을 잃게 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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