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고 나서
이 작품의 주인공 요조는 한 마디로 사회 부적응자이고, 또 다르게 보자면 인간 사회의 무서운 이면, 이기심, 위선, 생존 경쟁 등을 고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긴 해도 모더니즘 작품의 주인공,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인물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1940년에 발표된 '직소'는 유다의 배신을 다룬 작품으로 예수에 대한 사랑과 질투, 실망 등이 뒤엉킨 작품이다.
- 발췌
(인간 실격)
- 서문
11)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조차 없다.
- 첫 번째 수기
17)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7)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두 번째 수기
32)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저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1)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 ) 범인 의식
53) 이 세상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매일 밤 잠 못 이루며 지옥에서 신음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옥 쪽이 편할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65) 나중에 제 내연의 처가 강간당하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는 일조차 있었을 정도입니다.
68)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최초의 자살 기도. 바다에 뛰어듬.)
- 세 번째 수기
82) 아무하고도 교제가 없다. 아무 데도 찾아갈 곳이 없다.
90) 저는 하느님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92)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 ㄴ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97)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123)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하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128)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쳐지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야. 죽고 싶어. 죽지 않으면 안 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
134) 스물일곱.
- 후기
(직소(直訴))
145)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 그분이 죽는다면 나도 함께 죽을 테다. 그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내 거야. 그 사람을 남의 손에 넘기느니, 차라리 그전에 내가 죽여버리겠어.
146) 할 수만 있다면 그분이 설교 따위는 그만두고 나하고 단둘이서 평생 오래오래 살았으면 싶은 거야. 아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지금 현재의, 이 현세의 기쁨만을 믿어.
150) 아아, 질투라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악덕인가. 내가 이렇게 목숨을 버릴 각오로 그분을 우러러보고 지금껏 복종해 왔는데 나한테는 한마디 다정한 말씀도 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천한 촌년을 볼을 붉히면서까지 감싸주시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일)
153) 이제는 자기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그즈음 슬슬 깨닫기 시작해서, 허점이 너무 드러나기 전에 일부러 제사장이 자신을 체포하게 만들어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진 것이겠지요.
154) 바보 같은 얘깁니다. 웃기는 얘기죠. 그 말투를 흉내 내는 것조차도 꺼립칙합니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분은 미친 것입니다. 또 그 밖에도 기근이 있을 것이라느니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느니.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달은 빛을 발하지 않게 되고 지상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체 주위에 그것을 쪼는 독수리가 모여든다느니. 사람들은 그때 통곡하고 이를 갈 것이라느니. 정말이지. 당치도 않은 폭언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댔던 것입니다. 얼마나 무분별한 얘기를 하는지. 우쭐거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바보인 거야. 분수도 모르고. 참 잘났다. 이제 저분은 죄를 피할 수 없어. 틀림없이 십자가. 그렇게 결정된 거야.
161) 저야 뭐 천생 장사꾼이죠. 천시받는 돈으로 그분에게 멋지게 복수해 주겠습니다. 이런 게 저한테 가장 어울리는 복수의 수단이죠. 그것 보라고! 은 삼십 냥에 녀석은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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