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차를 몰고 나카다케 분화구 쪽으로 올라갔다. 도로 옆의 작은 건물에 있던 노인분이 차를 세우길래 입장료를 받나 했더니 종이를 한 장 주면서 뭐라고 하는데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종이에는 일어와 영어와 한글, 중국어로 분화구 견학할 때의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천식 등이 있는 사람에게는 화산 가스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안내 책자에는 분명 로프웨이가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올라가면서 이리저리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다(인터넷을 찾아보니 로프웨이 운행은 2019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다시 조금 더 올라가자 이번에는 진짜 요금소가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도 주차료를 받는 것인가 하고 지레짐작을 했으나, 분화구로 올라가는 도로 자체가 유료도로였다.
2,3분 더 올라와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올라온 길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중간에 요금소가 보이고, 그 너머로 에보시다케도 보인다.
분화구 쪽을 바라보니 화산의 마그마 활동이 그렇게 심하지 않은지 연기가 그렇게 많이 분출되고 있지는 않았다. 분화구 쪽으로 다가갈수록 매캐한 유황 냄새도 좀 났으나 이틀 전 운젠 지옥에서 맡았던 냄새보다 더 심하지는 않았다.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아서인 듯.
[영어 안내문 번역] 나카다케는 생성과 붕괴를 반복하고 있다
분화구 지역을 포함하여 나카다케는 마그마의 분출에 의해 생성되고 폭발적인 분출에 의해 붕괴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 두 번 발생했다. 현재, 가장 최근에 생성된 화산쇄설구(Pyroclastic Cone)가 마그마의 분출로 이 지역 내에서 커지고 있다. 나카다케의 정상은 이전의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옛 화산체(Volcanic Edifice)의 일부이다.
현재 나카다케는 북에서 남으로 1km 이내에 7개의 분화구가 있다. 북쪽에 위치한 첫 번째 분화구와 남쪽의 네 번째 분화구는 마그마와 화도(volcanic conduit)라 불리는 화산 가스 공급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네 번째 분화구는 20세기 초기에 분출했고, 첫 번째 분화구는 여러분 바로 앞에서 현재도 화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나카다케는 여전히 생성과 붕괴의 반복 사이클 도중에 있다.
해발 1323m인 제1분화구 코 앞까지 다가가자 분화구 안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그 규모가 잘 가늠이 안 되지만 실제로는 엄청 크다(직경이 600m, 깊이 130m, 둘레는 4km). 바닥에 호수가 형성되어 있는지 보고 싶었으나 안전 펜스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전체를 다 둘러볼 수는 없었고 남쪽 일부 구간만 통행이 가능했다.
코코노에 현수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배가 있는 직원분에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더니 다소 단호하게 근무 중이라 안 된다고 했다. 분화구 옆이라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옆에 있는 다른 분에게 부탁해서 한 컷을 찍었다.
현재도 활동 중인 첫 번째 분화구를 구경하고 우측으로 돌아 나와 이어지는 (분)화구들도 구경을 했다(이 당시에는 이것들이 화구인 줄도 잘 몰랐지만).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은 아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화산 지역의 독특한 풍경이었고 무엇보다 규모가 엄청났다.
화구 지역을 지나자 불모의 검은 사막 같은 넓은 지형이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쯤에서 더 이상 가지 않고 돌아갔는데, 나는 이곳까지 왔으니 좀 더 구경해 보자는 심산으로 계속 걸어갔다가 아주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외계 행성 같은 황량한 풍경을 가로질러 남쪽의 언덕으로 나아갔다.
내가 지나온 이 넓은 지역은 '스나센리가하마'(砂千里ヶ浜)라고 한다. 분화구로 올라오기 전에 보았던 쿠사센리가하마가 풀이 천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는 의미라면, 이곳은 모래(검은 화산재)가 천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는 과장이다. 나카다케 분화구에서 나오는 황화수소 등의 유독 가스로 식물이 거의 살 수 없는 곳이다.
언덕 위에 올라가 뒤돌아보면서 다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그런데, 언덕에서 남쪽을 보니 아소시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것과 흡사하게 수백 터 높이의 고원 지형이 길게 뻗어 있어, 이 지형적 특징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한번 증폭되었다.
언덕 위에는 돌무덤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백인들이 4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을 들어보니 프랑스인들인 듯했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하다가 동쪽에 솟아 있는 산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혹시 등산로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조금 더 산 쪽으로 가보았다.
언덕에서 내려오자 화산이 분화했을 때 용암이 강물처럼 흘러나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불덩이가 물처럼 흐른다는 것, 텔레비전 화면에서 가끔씩 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곧이어 발견한 노란 화살표.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또 정상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아무 정보도 없이 일단 앞에 보이는 봉우리까지만이라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때 시각이 2시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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