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1일. 화. 다섯째 날
내가 배정받은 방은 대로변이었는데 아고다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반대편 방을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차량 소음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방음이 잘 되어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어제저녁에 차로 두 시간 가까이 돌고 또 돈 도시였지만 그래도 오이타 시를 좀 구경할까 하고 밖으로 나가 좀 걸었다.
십오 분 정도 걷다가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고 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이날은 유튜브에서 보았던 아소산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아소산은 활화산의 분화구를 둘러볼 수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유튜브 촬영자들은 화산 분화가 심해서인지 분화구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주변 풍경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규슈에 와서 운젠의 최고봉이 된 헤이세이 신잔 등 화산 지형을 여럿 보았음에도 여전히 낯설고 이국적이었다.
그전에 오이타 현의 또 다른 명소인 하라지리 폭포에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직탕폭포처럼 일본의 나이아가라, 혹은 동양의 나이아가라라는 별명이 붙어 있어서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경차라 그런지 놀라운 연비를 보여주던 나의 차도 이틀을 달렸더니 기름 표시 레벨이 많이 내려가서 오이타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기름을 한 번 넣어 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계속해서 눈에 띄던 ENEOS 주유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곳이 셀프 주유소여서 직접 주유를 해야 했다. 주유구는 왼쪽 편에 있는 것으로 확인해 두었기에 먼저 차를 그쪽으로 대었다. 그다음 현금으로 계산을 할까 하다가 과감하게 신용카드를 선택하고 신용카드를 넣었더니,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상하게도 넣자마자 튀어나왔다. 유종은 영어 표기도 되어 있어서 경유는 패스하고, 휘발유는 프리미엄과 레귤러 두 종류가 있었다. 당연히 레귤러를 선택하고는 그다음 한자로 만과 읽기 어려운 가타카나가 적힌 표시를 눌렀던 같다(満タン 만땅).
그다음 상황은 이해도 잘 안 되고 기억도 불확실하다. 주유를 하고 금액을 확인해 보니 2931엔인가 그랬는데, 영수증을 꺼내 보니 1엔이라고 쓰여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게 확실해 영수증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젊은 직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번역기를 이용했는데, 직원은 신용카드로 계산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면서 그냥 가도 된다고 했다. 적지 않은 금액의 기름을 무료로 넣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더욱 컸다(글을 쓰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카드 이용 내역을 확인해 보니 26,608원이 결제되었다. 영수증에 1엔이라고 찍힌 것과는 상관없이 직원의 말대로 제대로 처리가 된 것이었다. 무지가 나은 헛소동!).
이후 하라지리 폭포까지 가는 데에는 한 시간 좀 덜 걸린 것으로 보이는데,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고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국도와 현도를 따라가는 특이한 것 없는 무난한 여정이었던 듯하다.
하라지리 폭포에 도착한 시각은 9시 50분. 무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폭포로 향했다.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고, 입장료도 따로 받지 않았다. 좀 이른 시간이 아닌가 했으나 단체로 관람을 온 사람들로 붐볐다.
[영어 소개문 번역]
하라지리 폭포는 오이타 현 남쪽에 자리한 폭포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폭포가 호(arc)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고 해서 동양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폭포의 높이는 20m 정도이고, 그 폭은 120m에 달하는데, 9만 년 전 이곳에서 57km 떨어진 아소산의 분화로 인해 생성되었습니다.
위로는 현수교가 있고 아래로는 폭호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장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라지리 폭포는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입니다. 이곳에서 자연을 즐기고, 신선한 채소와 닭 튀김 등의 맛있는 지역 음식도 만끽하기 바랍니다.
전날 보았던 코코노에의 신도 폭포와 함께 이 폭포도 일본의 100대 폭포에 속한다고 하니 기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이 폭포 또한 화산의 폭발로 형성되었다고 하니 규슈에서는 화산과 연관되지 않은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고 해야 할까?
평지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폭포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들판을 따라 달리던 강물이 단층을 만나 수직으로 낙하 하는데, 그 폭이 내가 지금까지 봐온 폭포 중에서 가장 넓었다(나이아가라나 이구아수 폭포를 본 사람들에게 이 폭포는 아담한 사이즈에 지나지 않겠지만). 중앙에 떨어지는 폭포가 물살이 가장 힘찼지만, 오른쪽으로 넓게 떨어지는 폭포도 수량이 적지 않았다. 장마철에는 이 폭포가 어떤 모습일지? 폭호도 상당히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서 폭포 바로 앞에서도 감상해 보았다.
다시 위로 올라와 폭포에 더 접근해 보았다. 사실 폭포 위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폭포에 신비감을 더해 주는데 이곳은 폭포 위에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도 있고, 거기다 약간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미끄러질 염려가 없어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바로 옆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완전 개방형 폭포라고 해야 할까?
돌아 나와 현수교로 향했다.
삼나무?가 늘어선 하천 옆 길을 따라 좀 걸어가다가 올라왔다.
50분 정도 이 하라지리 폭포에 머물렀다. 이 폭포는 일단 접근성이 아주 좋으며, 그렇게 높지 않은 대신 폭이 넓고 폭호가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연 폭포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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