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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낯선 간이역

by 길철현 2024. 9. 2.

낯선 간이역

                     김광규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간이역마다 서며 가며

3시간쯤 달려왔다

경지 정리가 안 된 먼 시골

논밭을 지나

난간 없는 다리를 건너

도룡농이 많이 산다는 산자락을 빙 돌아서

터널을 통과하니 저 아래

눈 덮인 계곡 한가운데

초라한 교회 종탑이 서 있는 마을

낯선 간이역에 도착했다

승하차 여행객도 별로 없고

멀리 산 중턱에 

조그만 암자가 보이는 곳

여기는 아무도 모를 것 같아

반세기를 이어온 인연 모두 끊어버리고

홀로 여생을 보내고 싶어지는 곳

여기서 내릴까

내려서 주저앉아버리까

망설이는 사이에 호각 소리 울리고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츰 멀어지는 그곳

몇 번이고 되돌아보면서 나는

또다시 기회를 잃어버렸다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72-73.

 

- 현실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그곳이 작은 시골일 경우의 흡인력은 순간적으로 강력하다. 하지만 그곳이 생활의 터전이 되는 순간, 그곳이 또다시 현실이 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뒤따르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럼에도 그런 상상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시는 에드워드 토머스의 '애들스트롭'(Adlestrop)이라는 영국 시와, 잉글랜드 댄과 존 포드 콜리의 "우리 단 둘이"(Just the Two of Us)라는 미국 대중가요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