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달러
김광규
바다처럼 넓어 수평선 까마득한 호수
누런 흙탕물 가로질러 거센 물결 일으키며
관광객 10여 명 태운
모터보트가 달려간다
목제 어선에 폐차 핸들을 붙인
사제 유람선이다
수상 가옥과 갈대숲이 금방 멀어지고
배는 호수 한가운데 멈춰 선다
가이드가 항로를 설명하는 동안
작은 카누 한 척이 서둘러
유람선으로 다가온다
한 손에 아기를 안고
또 한 손으로 노를 젓는 엄마 옆에서
큰 뱀을 목에 감은 어린애가
손바닥을 벌리며 원 달러
원 달러. . . 외쳐댄다
물 위를 떠돌며 사는
선상 난민 가족이다
관광객들이 미처 사진을 찍기도 전에
시동을 건 모터가 사나운
파도 일으켜 난민선 쫓아버리고
뱃머리를 돌린다 원 달러
원 달러 . . . 보트피플과
관광객들 사이의 유일한 통용어
원 달러가 모터보트 소음 속에
사라져버린다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78-79.
-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민감한가? 혹은 둔감한가? 잠시의 관심이 끝인가? 거지가 오히려 더 부자야? 이런 식으로 부인을 하고 마는가? 내 살기도 바쁘다고 말하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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