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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생선 장수 오는 날

by 길철현 2024. 9. 3.

생선 장수 오는 날

                               김광규

 

소형 화물차에 확성기를 장착한

생선 장수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온 동네가 시끄러워집니다 집집마다

담을 넘고 창문을 열고 각종 해산물이

쳐들어옵니다 참조기 아구 꽃게 병어 도다리 홍합

가오리 주꾸미를 앞세우고 생선들이

앞을 다투며 몰려옵니다 임연수 가자미

여섯 마리에 5천 원*

생태 갈치 먹갈치 세 마리에 5천 원

오징어 속초 오징어 네 마리에 5천 원

참치 한 마리에 2천 원

꽁치 다섯 마리에 2천 원

낙지 산낙지 두 마리에 5천 원

싱싱한 동태 두 마리에 4천 원

고등어 생고등어 다섯 마리에 4천 원

자반 두 손에 4천 원

왕조기 다섯 마리에 만 원. . . .

80데시벨이 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또는 몇 마리 씩 물고기들이 

꼬리를 치며 아가미를 불룩거리며

귓속으로 쑤시고 들어옵니다

해산물 이름이야 들을 만하지만

싸구려 생선 값을 견디다 못해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면

생선들은 갑자기 시체로 되돌아가고

행상 차는 매연을 뿜으며 사라집니다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 멀어져가고

메아리처럼 풍기는 생선 비린내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죽어가는 우리들의 냄새처럼

 

* 환율: 1달러 = 1,044.46원 (2005. 2. 16)

 

김광규. [하루 또 하루]. 문지. 2011. 40-41.

 

- 생선 행상 차가 확성기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느낌을 적은 시. 확성기가 시끄러운 것은 사실이나, 행상인에게는 가혹하다. 학창 시절 수면 장애에 시달리다 낮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행상 아주머니가 시끄럽게 생선을 사라고 외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고, 화가 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다가 길을 나섰는데, 어떻게 그 아주머니는 고함을 지른 장본인이 나라는 걸 알았는지 '미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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