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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밖의영상들

다음 침공은 어디 - 마이클 무어 (고대 시네마 트랩, 160912 - 친구 조영준) [160929](Where to Invade Next - Michael Moore)

by 길철현 2016. 9. 29.


(영화를 본 지 벌써 보름 정도 지났고, 영화를 볼 때도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얼마나 그 때의 인상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흐릿하나마 몇 가지 인상이나 기억들은 적어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더 이상 미뤘다가는 영원히 의식의 지평 아래로 가라앉아 버릴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친구인 조영준이 몇 번이나 요청을 하는 것을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않다가 -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다지 큰 관심도 없었다 -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듯해서, 또 공짜로 영화를 보여준다는데(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기회를 놓칠 수도 없고 해서, 재인폭포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득달같이 달려와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의 전쟁과 관련하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테러 등의 이면이나, 중국과 미국의 갈등 내지는 대결을 중심으로 다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에서 오히려 사랑과 웃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이클 무어하면 일단은 그의 큰 체구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나는 그가 한 달 동안 패스트 푸드만 먹고 자신의 몸이 나빠지는 것을 기록함으로써 유명해진 감독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나의 선입견이자 착오였다. (실제 이 영화 [슈퍼 사이즈 미]를 제작한 감독은 모건 스필록이라고 나온다.)


그의 많은 영화들 중에서 그의 이름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린 가장 유명한 영화는 2004년에 나온 [화씨 911]이 아닌가 한데, 이 영화는 나도 DVD로 구입해서 봤다. 그의 진보적이고 색다른 시각, 이를 테면 조지 부시 일가의 석유 산업과의 관련성 등에서 빈 라덴 측과 어떻게든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 - 워낙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인터넷을 보니 그것이 이 영화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 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미국 정부에 대해서 너무 비판 일변도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는 않았다.


이번에 본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는 예전의 그 날카로움이나 치열한 비판보다는 인간의 가능성과, 웃음과, 그리고 미국에서 나온 창의적인 생각들을 다시 지향하려는 의도가 더욱 크게 부각된다. 유럽 각국들이 지난 장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 번째 국가로 나온 이탈리아였는데, 미국이 일에 허덕이는 반면에 이탈리아는 일과 함께 휴식 * 휴가가 갖는 중요성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꿈만 같은 노동 조건(일 년에 4,50일 이상되는 유급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나오는뎨)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무어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노동 조건이 이탈리아 경제가 현재 처한 어려움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의 질 높은 급식이,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숙제가 거의 없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질 높은 교육을 자랑하는 핀란드, 또 학비가 없는 슬로베니아.


그리고, 마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믿기지 않는 포르투갈의 마약 합법화 정책, 범죄자의 인권도 최대한 보호하려 노력하는 노르웨이, 과거 나치의 잘못을 지금까지도 반성하고 있는 독일(소수이기는 하지만 히틀러를 찬양하는 집단이 있긴 하지만). 아이슬란드가 전세계적 금융 위기 때 엄청난 어려움을 겪은 것을 남성들의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성향과 일정 정도의 연관이 있다고 보고 여성들의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성향이 갖는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 등등.


마이클 무어는 영화의 말미에서 유럽 각국이 갖는 장점들의 아이디어가 사실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전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장점들을 미국에서 구현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늘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데), 좀 바꿔 말해서 인간이 현재의 상황보다 좀 나은 상황에서 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지만, 지금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국들, 그리고 남미의 열악한 경제 상황 등 큰 문제들만 생각해 보아도, 유럽 각국들이 누리고 있는 번영이나 안정이, 그 외 세계의 빈곤과 무관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고, 또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수십 년전과 비교해 볼 때는 상당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그 때와는 다른 사정에서 - 그 때는 그래도 최소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지 않았는가? - 여러 암울한 지표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서구인의 시각은 마이클 무어의 그것과는 또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