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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빗소리

by 길철현 2024. 9. 26.

빗소리

                   김광규

 

반가워라 한여름 빗소리

손가락 마디만 한 대추나무 잎

한 뼘쯤 자라서 반짝이는 감나무 잎

어느새 탁구공만큼 커진 밤송이

쟁반처럼 넓은 후박나무 잎

더위에 지쳐서 떨어져버린

능소화 주황색 꽃잎 들을

후두둑 다급하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뒤따라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오랫동안 가물었던 논과 밭

훅훅 열기를 뿜어대는 도심의 차도와 고층 아파트

곳곳을 흠뻑 적시며

플라타너스 가로수 통째로 흔들고

때로는 돌개바람으로 창문을 부숴버릴 듯 두들기며

장엄한 음향 들려주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이 거센 비바람

사이사이에 매미들의 합창

꾀꼬리와 지빠귀들 틈틈이 지저귀고

천둥소리 북소리처럼 울리며

한나절 내내 또는

쉬엄쉬엄 하루 종일

땅 위의 온갖 나뭇잎들 모조리 씻겨주고

섭씨 36도의 더위 시원하게 식히버리며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생명의 빗줄기

대지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고 

분수가 되어 다시 솟아올라오라

아무리 오래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빗소리 한여름 빗소리

 

김광규. [오른 손이 아픈 날]. 문학과지성사. 2016. 26-27.

 

-이번 여름은 정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지난번 비로 비로소 그 기세가 꺾였다. 아직도 두려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여름 소나기가 이 시처럼 더위를 식혀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비가 와도 더위가 가시지 않고, 무엇보다 습기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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