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통곡
김광규
이리호 호반에서 혹시
존 메이너드*를 만나보았나
디트로이트와 버팔로를 왕복하는 페리선
조타수 존은 갑자기 화염에 휩싸인 배를
죽음 무릅쓰고 호반에 안착시켜 승객들
모두 구하고 자신은 조타실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백여 년 전에 연기로 사라졌으나
그의 혼은 지금도 청동 기념판 속에 살아 있다
치욕스럽구나 영혼을 잃고 육신만 남은 무리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침몰했을 때
3백여 승객 물결 사나운 맹골수로에 버려둔 채
자기들만 구명정 타고 육지로 도망친 선원 팀
승객의 귀중한 목숨보다 선주의 검은 돈을 위하여
선박의 평형수와 무게중심을 팔아먹고
가라앉는 배 속에 아이들 가두어 죽이고
침묵의 장막 뒤로 숨어버린 무리들
도저히 인간으로 용납할 수 없어
분노와 절망이 온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 모두를 면목 없게 만든
그들이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고
짐승만도 못한 어른들이라고
욕설만 퍼부을 수도 없지 않은가
목숨 잃은 어린 영혼들 너무 불쌍해
실종된 육신이라도 어서 돌아오라고 우리는
목메어 절규하는 수밖에 없는가
조금 사리 때마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밀려왔다 물러가는 파도 앞에서
통곡하는 수밖에 없는가**
* 영역 졸시선 The Depths of A Clam(Buffallo, 2005) 출판 기념 행사로 2006년 4월 미국 낭독 여행을 갔을 때, 바다처럼 큰 오대호의 이리 호 호반에서 존 메이너드 기념판을 보았다.
** 2014년 5월 5일에 탈고한 졸시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까지도 "그렇다" 한마디뿐 아닌가.
김광규. [오른 손이 아픈 날]. 문학과지성사. 2016. 86-87
- 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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