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깊은 속으로
박쥐처럼 사라지다
기차는 향수를 싣고
납 같은 눈이 소리없이
외로운 역을 덮다
무덤같이 고요한 대합실
벤치 우에 혼자 앉아
조울고 있는 늙은 할머니
왜 그리도 내 어머니 같은지?
귤껍질 같은 두 볼이
젊은 역부의 외투 자락에서
툭툭 떨어지는 흰 눈
한 송이 두 송이 식은 난로 우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진다
"자화상". 1943.
- 기차가 떠나고 난 다음의 고요한 겨울 대합실의 정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졸고 있는 할머니의 '귤껍질 같은 두 볼'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부분이 흥미롭다. 후일 곽재구는 '사평역에서'라는 시에서 유사한 분위기의 겨울 대합실을 좀 더 구체적이고 절절하게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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