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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한국현대시

박노해 - 그 한 사람

by 길철현 2024. 9. 25.

그 한 사람

                     박노해

 

가을 나무 사이를 걸으며

먼 길 달려온 바람의 말을 듣는다

정말로 불행한 인생은 이것이라고

 

좋고 나쁜 인생길에서 내내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게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나

길을 잘못 들어서 쓰러질 때에도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와

상처 난 몸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빛나는 자리에서나

내가 암울한 처지에서나

내가 들뜨거나 비틀거릴 때나

 

나 여기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

내 인생의 그 한 사람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

 

--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일 것이다. 한 몸으로 전적으로 의지했던 존재, 그 존재와 인간은 필연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향을 그리듯, 원초적 합일의 시기를 항상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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