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사람
박노해
가을 나무 사이를 걸으며
먼 길 달려온 바람의 말을 듣는다
정말로 불행한 인생은 이것이라고
좋고 나쁜 인생길에서 내내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게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나
길을 잘못 들어서 쓰러질 때에도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와
상처 난 몸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빛나는 자리에서나
내가 암울한 처지에서나
내가 들뜨거나 비틀거릴 때나
나 여기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
내 인생의 그 한 사람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
--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일 것이다. 한 몸으로 전적으로 의지했던 존재, 그 존재와 인간은 필연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향을 그리듯, 원초적 합일의 시기를 항상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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