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사람
박노해
가을 나무 사이를 걸으며
먼 길 달려온 바람의 말을 듣는다
정말로 불행한 인생은 이것이라고
좋고 나쁜 인생길에서 내내
나를 지켜봐 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게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나
길을 잘못 들어서 쓰러질 때에도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고난과 시련을 뚫고 나와
상처 난 몸으로 돌아갈 때에도
아무도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는 느낌
내가 빛나는 자리에서나
내가 암울한 처지에서나
내가 들뜨거나 비틀거릴 때나
나 여기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
내 인생의 그 한 사람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2022.
-- '그 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일 것이다. 한 몸으로 전적으로 의지했던 존재, 그 존재와 인간은 필연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향을 그리듯, 원초적 합일의 시기를 항상 그리워한다.
'한국시 및 감상 >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세실리아 - 얼음 호수 (0) | 2024.11.10 |
---|---|
원동우 - 창혼唱魂 (0) | 2024.10.04 |
이윤학 - 가을 저녁 빛 (0) | 2024.09.19 |
탁구 시 두 편 (8) | 2024.09.18 |
이동훈 - 몽실 탁구장 (1) | 202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