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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돌구멍절을 찾아서

by 길철현 2025. 2. 23.

                         -- I can't go on. I'll go on. 

 

살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듯

죽어야 할 까닭도 마땅치 않다

하나 생각을 한 번만 뒤집으면

살아야 할 무수히 많은 까닭들과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박차고 떠나야 할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있다

역으로 세상살이의 즐거움과 고통이

모두 언어가 빚어내는 무늬에 지나지 않는가

반에 반끗 차이로 내기 시합에 패해

밤잠을 설치면서도

포탄에 맞아 창새기가 튀어나온 채

신음소리로 연명하는 아이의 화면에는

참, 안 됐군

한 마디로 입막음을 하고 마는 자신이

문득 섬뜩해지다가도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 소리에도 

머리 끝이 쭈뼛설 때면  

나와 타인의 거리를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견딜 수 없어도 견디고

참을 수 없어도 참으라는 

신물이 올라오는 말

이 세상을 창조한 개새끼를 

똥통에 빠트리고 싶다가도 

엄마에게 환한 미소를 던지는 아기와

거기에 아무 조건 없이 화답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넉넉히 담아낼 듯하다

이월이 하순을 향해 치달리는데도

지구 온난화가 무색하게

북극 한파는 수그러들 줄 모르는데

없는 답을 찾기라도 하는양

묵묵히 가파른 산길을 올라간다

약해진 괄약근은 오래 버틸 힘이 없는데

똥은 점점 더 심하게 항문에서 요동을 친다

어둑하던 산길은 어느새 떠오른 해로 환해지고

바위 구멍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는 암자

그곳은 정녕 피안정토일까

그게 아니라면 한소식이라도 들을까

그곳 또한 사바 세계에 지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해우소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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