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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김우창. 문학의 즐거움과 쓰임. <문학의 지평>. 고려대. 1984.

by 길철현 2025. 3. 20.

 
[발췌]
3) 즐거움의 궁극적인 형태는 그저 즐겁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가치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의 모습을 예술작품에서 발견한다. 
4)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삶의 목적에 부합한 것은 그러한 목적에 관계 없는 즐거움의 형태를 띠기 쉽다.
-) 즐거움과 공리적인 효용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
5) 이상적 상태에서 사람의 행동은 그것 자체로 즐거울 수 있으며, 동시에 삶의 기능과 보람을 높이는 것이 될 수 있다. 
-)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아이들이 동화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 부딪치는 실제적 또는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암시들. 
-) 이야기 -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어떤 태도. 감성의 세련(훈련)
8) 발터 벤야민  - 이야기의 한 기원을 농경적 사회에 있어서 장꾼들이, 이 장 저 장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 받던 일에서 찾고 있다. 
9) 정보 -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성, 전형성. 
-) 이야기의 일반성이나 전형성은 구체와 일반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범례성이라고 하여도 좋다. 
10) 경험적 평균성, 형식적 가능성. 
11) 문학이 어떻게 매우 구체적인 체험을 다루면서 동시에 일반적 의미를 띨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자주 논의되는 것인데, 이 경우의 일반적 의미란, 이미 말한 대로, 평균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일에도 관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특정한 삶의 문제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밝히는 일에도 관계되는 것으로 옮겨 볼 수 있다. 
-) 상궤를 넘어서는 이야기의 격렬성 -- 주의의 경제
-) 어떤 일의 가능성은 그 한계에서 가장 선명하여진다. 이것은 형식적 관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수학이 극한의 개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비슷하다. 
12) 라이오넬 트릴링 - '미트리다테스적 기능' : 반복강박
-) 고통 또는 다른 극렬한 인간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고통을 되돌아봄으로써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거나 또는 극복할 수 있다는 심리적 보장을 얻으려하는 의도에서이다. 트릴링은 이 심리적 동기를 어린 아이들이 고통의 장면을 되풀이하여 연출하여 이를 제어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에서 볼 수 있는, 반복강박관념(repetition compulsion)에서 찾았다. 
13) 현실의 탐색은 현실에의 순응과 함께 현실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현실 원칙을 좇으면서도 희망의 차원을 지니게 마련이다.
--) 꿈을 그리는 것이 문학이라는 상식적 문학관은 일리가 있는 문학관이다. 
--) 전기적(기이하여 세상에 전할 만한 것) 산해경. 지리지
14) 환상적 이야기는 갖가지 공상 가능한 일과 존재로 세계를 채움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일상적 질서 이상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
--) 서스펜스는 인간이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행동자라는 데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15) 한편으로 서스펜스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래에 대하여 불안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고 창조하고자 하며 이러한 통제와 창조를 기획하는 자로서의 인간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주체적 의지의 적수로서 또는 방해물로서의 사실의 세계가 무겁고 실감있는 것일수록 그 시련 속에서 살아 남는 주체의 모습은 든든한 것으로 여겨진다. 달리 말하여 이야기의 재미, 소설의 재미는 사실의 다양한 변주 속에서 확인되는 주체적 지속에 관계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는 결국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인간의 자신의 주체적 능력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16) 잘 된 이야기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 없이 자기 스스로의 주체적 자유에로 돌아갈 수 있게, 그리하여 그 자유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숨겨가지고 있다. 
17) 볼프강 이저 - 한 작품의 효과는 작품 안에 숨어 있는 불연속성의 함정에 다분이 달려 있다. 
18) 시는 침묵에 싸여 있는 말, 또는 침묵과 말이 짜여져서 이루어지는 말이다.
--) 시는 의미의 컨텐스트 없이 의미를 전달한다. 이 컨텍스트는 우리의 상상력에 의하여 구성된다.
--) 이 상상적 구성은 이미 주어져 있는 언어의 최소한도의 지시에까지 주의를 기울임으로 하여 가능하다.
--) 시의 말의 표현적 암시의 모든 것이 침묵 속에서 살아나 상상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또는 시적 언어의 표현적 암시는 이러한 침묵을 상정하여 비로소 그 기능을 발휘한다. 
--) 시는 사실 이야기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주체적 체험의 성격이 강한 문학 형식이다. (시에 관계되는 행동이 실제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데 한정된다는 것도 이러한 시의 주관성을 강화하게 된다.)
19) 말이 불러 일으키는 의미에 주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주체적 자유를 의식하는 이중적 의식작용을 거친다. 우리는 이미 어떻게 시의 모든 표현적 가능성이 침묵 속에서 살아나는가 하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세계와 세계의 사물들에 대하여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즉 세계가 진정으로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의 주체적 공간에서 재구성됨으로써이다. 
--) 시는 이 상상력의 구상화이다. 또 모든 문학 활동은 이 상상력의 자기 확인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이야기, 또는 시, 그리고 일반적으로 문학은 사람이 세계에서 사는 근본 방식에 깊이 관계되어 있다. 사람은 세계와의 교섭 속에서 산다. 그런데 이 교섭은 객관적 사물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통합 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문학의 즐거움은 이 주체적 작용에서 온다. 이것은 세계와의 활발한 교섭으로하여 확인되는 주체적 작용이다. 물론, 문학은 현실과의 직접적인 교섭이 아니라 이 교섭의 언어를 통한 재현이고 연습이다. 그럼으로하여 오히려 삶의 근본에서 사람이 세계에 대하여 갖는 관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