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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찾는 분들에게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거의 완벽한 일요일 아침 나들이(20250413) 1 (2*28민주운동기념관, 전태일 옛집)

by 길철현 2025. 4. 13.

'나는 내 고향 대구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 요즈음 드는 생각이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대구에서 살았고, 그 뒤로도 대구에 있는 본가를 계속 찾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하다는 단견을 지녀왔던 것이다. 그래서 별로 볼거리가 없다고. 어머니의 노환으로 2019년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다시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20일 전쯤에 친구 두 명이 서울에서 대구로 놀러 와 졸지에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조만간에 당시의 일들을 좀 길게 적어볼 계획이다). 친구들과 함께 시내 중심가를 비롯하여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두 사람이 낯선 곳에 온 사람 특유의 신선한 시선으로 대구를 즐기는 것을 보는 가운데, 나에게도 대구가 새롭게 다가왔다. 거기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수요일 아침에는 조깅을 하다 말고 떠도는 병이 도져 막무가내로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시내버스를 탔다가, 동산병원 앞에서 내려 길을 걷다 그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청라언덕'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이 글도 기대하시라).  
 
휴일인 이날 아침은 떠나도 떠나지 못하는 겨울이 다시 찾아왔는지 북쪽에는 눈도 내리고 돌풍이 분다고 했는데, 밖을 보니 의외로 날이 화창하여 가벼운 무장을 하고 나들이를 나섰다.  '천주교대구대교구청'(그 옆을 지나기만 했을 뿐 그 정체도 잘 몰랐던)을 중심으로 한 대구 중구 골목투어 5코스 '남산100년 향수길'이 나를 부르고 있어서 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서울의 남산이 도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듯 대구의 남산 또한 경상감영 남문 밖 남쪽에 위치하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그런데 현재는 아미산으로 불린다.  

 
지도에 나온 대로  '2*28민주운동 기념회관'(4*19로 이어지는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의 시위)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곳은 몇 년 전에 우연히 그 옆을 지나다가 알게 되어 한 번 들러보았다. 정권에 맞서 고등학생들이 분연히 일어났다는 점에서 놀라운 사건이었다.

1940년에 개교한 명덕초등학교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인근에 있는 명덕네거리(명덕로터리)에 2*28기념탑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

 

일명 바지 2벌, 62년2월 조성되어 89년 지하철공사로 인해 해체되어 현재는 두류공원 야구장에 새로 건립되어 있음. 실제 2.28 당일 명덕네거리를 지나간 학생들은 대명동 교사에 있던 대구고 학생들 뿐이나 이 기념물로 인해 명덕로터리가 2.28의 상징이 되었다(도시*지리 채널에서 차용). 로터리식 교차로라는 것이 흔치 않은데다 기념탑(당시에는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이 있어서 명덕로터리는 어린 시절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골목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산책에 나섰는데, 좁은 골목에 꽁꽁 숨어 있는 '전태일 열사 옛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김병호 기증작. '어머니의 그날.' 전태일의 어머니는 이소선. 아들의 유언에 따라 평생동안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집안을 찍었는데 유리에 비친 바깥 풍경이 더 두드러진다.

 
전태일 이야기를 나는 돌베개에서 나온 <어느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접했다(이 책의 저자는 나중에 조영래 변호사로 밝혀졌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던 그가 일찍 병사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홍경인과 문성근이 주연을 맡고 박광수가 감독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인상 깊게 보았다. 청계천의 공장단지가 전태일이 일하던 곳인데, 재작년에 청계천을 지나다가 분신 현장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발견하고는 시를 한 편 쓰기도 했다.
 
청계천에서--전태일 
 

법이란 것이 국가의 폭력이기도 해
그래서 좆같을 때도 많지만
버젓이 존재하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처벌 받지 않고
아무리 하소연하여도
누구도 코털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 현실
몸부림칠수록 초라해지는 이 현실
나라가 가난하니
우리 노동자는 더욱 가난하고
코피 터지는 어지러움에도
미싱에 매어달릴 수밖에 없구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어디로, 어떻게, 왜 삶이?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쉽사리 망각으로 덮어버렸나
다리 아래로 맑게 흐르는 물을 따라
사람들은 풍요를 노래하며 산책하고
내 옆에선
내 또래의 젊은 한국 남자가
외국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이균영의 소설 제목에서 차용.
 

분신 현장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