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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이야기

의성, 안동, 청량산 경북 북부 나들이(20250420) 1

by 길철현 2025. 4. 21.

전날 오랜만에 참가한 대구의 '서구 구청장기' 탁구 대회 단체전에서 천신만고 끝에 준우승이란 쾌거를 거뒀다. 탁구장 회원들과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고 아침 일찍 기분좋게 잠이 깨 서둘러 나들이에 나섰다. 막내동생이 이날 저녁까지 어머니 간병을 맡아주기로 했던 것이다. 

 

막연한대로 목적지는 의성의 고운사와 삼척의 광동호로 잡았다. 광동호는 7,8년 전 어느 겨울, 호수로 이어지는 샛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려다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돌아나온 기억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은 곳인데, 대구에서의 접근성이 너무 좋지 않아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일기예보에서는 많지는 않아도 비가 온다고 했고 차를 몰고 나서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늘 나들이의 변수가 될 듯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고운사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로 예상밖으로 짧았다.

 

차를 몰고 중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문득 '좋은 시 나쁜 시'라는 시상이 떠올라 이걸 물고 늘어졌다. 군위 휴게소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고등어 정식'으로 아침을 때웠다(시는 밥이 나오기 전에 거의 완성이 되었다).  

 

좋은 시만 시인가

나쁜 시도 시이다

기실 좋은 시 나쁜 시는커녕

시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시는 너일 수도 있고

그/녀일 수도 있다

심지어 밥이나 똥일 수도

어젯밤 삼겹살에 곁들여 마신 쐬주 

그게 아니라면 개나 소나무

혹 방금 내비에 뜬 지당지, 

그 다음 소금정지

이딴 건 시도 아니야 부르짖는 놈/년은

코가 하늘을 찌를 기세

그렇다, 시는 하늘이고 바다이고 땅

죽은 친구가 묻힌 묘원

차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

흐릿하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아무래도 괜찮아와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가 조우하는

묘점

결국 시는 돌고돌아 나? 

 

급한 소식이 왔다

 

군위에서 의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던가? 비가 꽤 많이 내려 어쩌면 계속 차를 몰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달려가니 빗줄기가 가늘어 지고 의성으로 들어서자 고속도로 옆으로 검게 타버린 산과 함께 매캐한 냄새가 몰려왔다. 최악의 산불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번의 경상도 지방, 그중에서도 이 의성 쪽의 산불이 진화된지 20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실 지난 3월 28일,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도 고운사에 한 번 들를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진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의성부터는 아예 고속도로가 폐쇄되어, 약속 시간에 맞춰 서울에 도착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전국을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닌 내가 고운사를 그동안 찾지 못한 것은 이 절이 고속도로나 국도, 심지어 지방도에서도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한 탓이었을 터, 대략적으로라도 위치를 모른 체 내비에 의존하여 가다보니, '남안동IC'에서 빠지라고 했다. 의성에 속하긴 하지만 안동에서도 가까운 곳인 모양이었다. 

 

IC에서 빠져나와 914번 지방도를 타고 동으로 이동하다가 이번 산불에 건물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길 건너편 주유소와 휴게소는 다행히 화마를 피해갔지만 이 공장은 무너져 내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전소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