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박미선. 한국민족문화대사전)
관촉사는 고려 전기, 승려 혜명이 창건한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관촉사 사적비에서 창건 경위와 중수 내력, 그리고 석조 미륵보살 입상의 조성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논산 지역은 지리적·경제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광종은 이 지역 지배를 강화하고자 관촉사를 창건하였다. 관촉사는 조선 후기까지 개수가 이어졌으며, 지역 노인들이 직접 개수하기도 하였다. 국보로 지정된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과 보물인 석등 등 많은 국가유산이 남아 있다.

[방문기]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미륵보살상이 위치한 곳의 옛지명을 따서 일명 은진미륵보살이라고 흔히 부름)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삼국시대나 이후 조선시대의 불상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이 불상은 고려 시대 몇몇 불상들의 특징인 듯한데, 이런 불상은 관촉사의 불상 외에도 '안동 제비원의 마애불, 파주 용미리의 석불, 월악산 미륵리의 석불입상, 운주사 천불천탑동의 불상'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408) 등이 있다(이중 파주 용미리의 마애석불과 운주사의 천불천탑동의 불상들은 보았다). 안내문에는 부여군 임천면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도 이 입상과 비슷한 시기 비슷한 양식으로 조성되었음을 알려준다. 이 불상은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55년이나 지난 2018년 4월 20일이 되어서야 국보로 승격되었다. 파격적인 이미지로 인해 국보가 되지 못하다가 이때가 되어서야 독창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파격적인 불상에 대한 나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에서 자세한 소개를 읽고 난 다음부터였던 듯하다. 3년 전인 2023년 9월 5일에 친구와 함께 관촉사를 찾아 이 불상을 친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사진만 찍고 방문기를 쓰진 못했다.
이날 논산을 방문했을 때 꽤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관촉사가 논산 시내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탑정호를 찾기 전에 다시 들렀다. 개장 시간이 8시로 좀 시간이 있어 부근에 있는 건양대학교도 한 번 들러보았다.
[건양대학교]

대학 본관을 찾아 교내를 차로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건양대학교에 의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문 앞 대학촌에는 원룸이 많았는데, 와야리라는 동네 이름이 흥미롭다. 세븐일레븐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웠다.

[관촉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의 계단을 올라왔던 첫 방문 때와는 달리 대바위 마을로 해서 주차장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석조미륵보살입상]
이 은진미륵을 실제로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무엇보다 놀라게 한 것은 석불의 규모가 상상 이상(높이 18m로 20세기 이전의 석불로는 최대)으로 크다는 것이었지만, 또 다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석불 뒤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얼굴로 인해 사등신이 안 되는 듯하고, 또 머리 위의 보관 또한 너무 길어보인다(그 윗부분은 보개). 얼굴도 넙적한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상인 석굴암 본존불의 이상적이고 고전적인 미와 비교할 때 너무나도 파격적이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김원용은 "3등신에, 미련하게 생긴 얼굴, 불상이라기보다는 그냥 돌기둥, 신라의 전통을 잃어버린 한국 최악의 졸작"(위키백과)'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못난이 불상은 하지만 근엄하고 이상적인 불상들이 줄 수 없는 친근감을 우리에게 준다. 거기다, 예술 작품이 천편일률적인 고전미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시도를 한 좋은 예도 된다. 유홍준의 설명에 따르자면, 중앙집권적인 통일신라의 문화가 지방 호족 중심의 고려로 넘어간 정치, 사회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도 한다.






























관촉사 관람을 마치고, 관촉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대바우와 관촉공원에도 잠시 들렀다. 노인분들이 주변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20230905)
친구와 관촉사에 처음 들렀다. 화순적벽을 보러가는 길이라 다소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그 와중에 이곳을 나와 탑정호까지 들렀구나). 이 당시에 찍은 사진들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과 큰 차이가 없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해서 계단을 올라 관촉사 경내로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9월 초이긴 했으나 여름 더위가 여전했던 것도 기억에 난다.














서두른 탓인지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안내문을 보지 못했다.













[한국민족문화대사전]
정의
고려 전기, 승려 혜명이 창건한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사찰.
건립경위
닫기969년 기사년(己巳年)에 한 여인이 반야산(般若山)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 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광종 21)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化現)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상서로운 기운이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가주(嘉州)에 큰 불상이 있어 역시 동쪽을 향해 서 있는데 빛이 같은 때에 서로 응하였다.”라고 하여 관촉(灌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변천과 현황
정문(正門)과 법당은 1386년(우왕 12)에 처음 지어졌고, 1581년(선조 14)에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에 승려 지능(智能), 1735년(영조 11)에 승려 성능(性能)이 개수하는 등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수(改修)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40년(영조 16)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석축을 고쳐 세우고 겸하여 상탁(床卓)도 모두 새롭게 했다고 한다. 1743년에 세워진 관촉사 사적비는 이 개수를 기념하여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미륵전과 대광명전, 삼성각, 명부전, 반야루,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국보로 지정된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과 보물인 논산 관촉사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인 관촉사 배례석,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인 석문(石門) 등이 있다.
관촉사 배례석은 길이 204㎝, 너비 103㎝, 높이 40㎝의 장방형(長方形)주9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 연꽃 3개를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연꽃 2송이가 연꽃 줄기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 놓아 4각의 모습을 띤다.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동 · 서 · 남 · 북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인데 그중 동문에 해당하는 이 문만 남아 있다.
의의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 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개요
관촉사(논산)은 논산 시내 남부 반야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논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한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귀중한 유물이다.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관촉사에 있는 유물 중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석등은 보물, 석문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08:00~20:00
쉬는날
연중무휴
주차시설
가능
문의및안내
041-736-5700
상세정보
화장실
있음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는 친숙한 별칭은 불상이 위치한 영토의 옛 행정구역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과거의 지명: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 불상이 세워진 전국의 행정구역명은 충청도 ‘은진현(恩津縣)’이었습니다.
- 불상의 명칭: 이 은진현에 있는 거대한 미륵보살이라고 하여 백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은진미륵'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진면 등이 통합되면서 현재의 행정구역명은 '충청남도 논산시'가 되었고, 공식 문화재 명칭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이 워낙 대중에게 친숙하다 보니, 지금도 공식 명칭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가유산청)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보살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63.01.21
소재지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 (구교리)
시대 고려시대
소유자 (소유단체) 대조사
관리자 (관리단체)대조사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에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이다.
머리 위에는 이중의 보개(寶蓋)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있다. 관 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머리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양쪽 귀와 눈은 크나 코와 입이 작아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매우 투박한 모습이다. 팔의 윤곽은 몸통에 붙여 옷자락으로 겨우 표현되었고, 손도 간신히 나타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보살상 앞에는 제사 음식을 차려 놓기 위하여 판판한 돌을 마련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동일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웅전에 부처님을 세 분 모시는 이유]
불교 사찰의 중심 법당(대웅전이나 대웅보전 등)에 가보면 불단에 세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삼존불(三尊佛)'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을 세 분 모시는 이유는 불교의 깊은 교리와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인데,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법신·보신·화신 (부처님의 세 가지 모습)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몸을 한 가지만으로 보지 않고, 세 가지 성격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를 '삼신불(三身佛)'이라고 합니다.
- 법신(法身 - 비로자나불):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입니다. 형체는 없지만 우주 만물에 가득 차 있는 절대적인 진리를 뜻합니다.
- 보신(報身 - 노사나불 또는 아미타불): 오랜 수행과 공덕의 결과로 나타난 무한한 복덕을 갖춘 부처님입니다.
- 화신(化身/응신 - 석가모니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역사 속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나타나신 부처님입니다.
💡 쉽게 이해하기: **물(H₂O)**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수증기(법신), 추운 겨울에 단단하게 뭉쳐진 얼음(보신), 그리고 우리가 직접 마시고 접할 수 있는 **물(화신)**처럼, 본질은 하나이지만 중생의 눈높이에 맞춰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2. 과거·현재·미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처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생을 구원하는 대표적인 세 부처님을 모시기도 합니다. 이를 '삼세불(三世佛)'이라고 합니다.
- 과거불 (연등불 또는 제화갈라보살): 석가모니불 이전에 전생의 깨달음을 인도한 과거의 부처님입니다.
- 현재불 (석가모니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직접 불법을 전해주신 현재의 부처님입니다.
- 미래불 (미륵보살/미륵불): 석가모니불의 구제를 받지 못한 남은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래에 오실 부처님입니다. (앞서 이야기 나눈 관촉사의 '은진미륵'이 바로 이 미래의 부처님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3. 공간과 영역에 따른 배치 (가장 흔한 조합)
사찰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 삼존불 조합은 대승불교의 공간적 구원에 바탕을 둔 조합입니다.
- 가운데: 이 세계의 주인이신 석가모니불
- 좌측: 동방 유리광세계를 다스리며 중생의 질병과 아픔을 고쳐주시는 약사여래(약사불)
- 우측: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리며 죽은 이들을 극락으로 인도하시는 아미타불
이처럼 세 분의 부처님을 함께 모시는 것은 "우주 전체(공간)와 과거·현재·미래(시간)를 통틀어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진리와 구원의 손길이 가득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 옆 비석]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옆에 있는 시주비에 새겨진 ‘금강회상도리회상옹호회상(金剛會上忉利會上擁護會上)’은 불교의 신중청(神衆請, 불법을 지키는 신중들을 모시는 의식) 등에서 쓰이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과 천신(天神)들을 부르고 찬탄하는 불교 의식용 문구입니다.
여기서 '회상(會上)'이란 부러 부처님이나 신들이 모여 있는 '법회의 자리'나 '무리'를 뜻합니다. 각 구절의 상세한 불교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금강회상 (金剛會上)
- 뜻: 금강 장사(금강역사)와 신장들이 모여 있는 자리.
- 의미: 불교의 청정한 도량을 더럽히는 사악한 마귀나 장애를 물리치고, 단단한 금강석 같은 지혜로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와 팔부신장(八部神將) 등의 호법신장 무리를 의미합니다.
2. 도리회상 (忉利會上)
- 뜻: 도리천(忉利天)의 성현들이 모여 있는 자리.
- 의미: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는 부처님 세상이자 하늘나라인 도리천의 왕 '제석천(帝釋天)'과 그곳의 천신·성현들의 무리를 뜻합니다. 이들은 인간 세상을 살피고 불법을 닦는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3. 옹호회상 (擁護會上)
- 뜻: 불법과 중생을 옹호(보호)하는 신령스러운 무리들이 모여 있는 자리.
- 의미: 불법을 가호하고 사찰과 도량, 그리고 불법을 믿는 불자들을 사방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옹위하는 모든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 한 줄 요약 비석에 적힌 이 문구는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장들과 도리천의 천신들, 그리고 도량을 지키는 모든 호법신들이여, 이곳(관촉사 미륵불 도량)을 옹호하고 지켜주소서"**라는 간절한 염원과 신앙심을 담아 새겨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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