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버드실 아래에 있어서 아래버드실, 하류리, 하류곡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의 서이면(西二面) 지역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 관할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편제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서일면(西一面), 서이면에 북일면(北一面) 일부를 통합하여 금성면을 개설하고, 서이면의 상류리와 중류리, 장목리 각 일부를 합하여 금성면의 법정리인 하류리로 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류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하류리는 금성면의 중앙에 자리하여 북쪽과 동쪽은 금성면의 마수리와 의총리, 남쪽과 서쪽은 금성면의 양전리, 파초리와 접한다. 사시봉[265.9m]이 하류리 북쪽에 있다. 산줄기가 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며 마수리와 경계를 이룬다. 하류리에서 오룡천이 기사천과 합류하며, 기사천은 하류리의 서쪽에서 동남쪽으로 관통하고 있다. 양지말들, 해타피틀, 청용들, 생계들, 바리개들 등이 있다.
[현황] 2023년 10월 31일 기준 하류리의 면적은 2.1㎢이며, 152가구, 257명[남자 131명, 여자 1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하류1리, 하류2리, 하류3리이며, 자연 마을로 갈골, 큰말, 모정, 문산[문비], 버드실[류곡], 하류, 서원[서당말, 서당촌], 신촌, 양지, 정문 등이 있다. 국가지원지방도 제68호선이 남쪽의 양전리와 접해서 지나간다. 하류리를 관통하는 큰 도로는 없지만 마을 길이 잘 닦여 있다. 문화 유적으로 효자 문충공(文忠公) 한교(韓皦)와 유곡(柳谷) 이유택(李惟澤)을 배향한 유곡사(柳谷祠)[금산군 향토유적 제17호]와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를 배향했던 초려서원(草廬書院) 터가 있고, 충청남도 지정 보호수[제8-3-16호]인 하류리 버드나무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탐방기] 금산읍에서 논산 방향으로 가다가, 하류마을이라는 이정표에 이끌려 마을로 들어가보았다.




이곳을 찾지는 못했다. 대신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나온 사진과 내용을 옮겨본다.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유곡사(柳谷祠)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효자인 문충공(文忠公) 한교(韓皦)와 조선 현종 대에 대흥현감을 지낸 유곡(柳谷) 이유택(李惟澤)[1600~1668]을 배향하는 사당으로, 유곡서원(柳谷書院)이라고도 한다. 한교의 자는 명보(明甫), 호는 회묵재(晦黙齋),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금주 영각리에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에 급제하였고, 보문각직제학 등을 지냈다. 임금을 잘 보필하고 정치를 잘하여 금계군에 봉해졌다. 한교의 효성은 후대까지 알려져 1550년(명종 5)에 유곡에 정려를 세웠으며, 1554년(명종 9)에 시호 문충을 받았다. 이유택의 호(號)는 유곡이며, 대흥현감을 지냈다. 69세 노인이 된 뒤에 어머니가 병들어 죽자 삼년상을 치르다가 상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유택의 아버지 이서(李曙)와 큰아버지 이시(李時)는 금계 한씨(錦溪 韓氏)의 사위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두 집안 인물이 함께 배향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유곡사는 금산군 금성면 하류리 315-2번지에 있다. 하류2리경로당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사당 북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는데, 유곡 이유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사시봉 능선을 넘어가면 금산군 금성면 마수리로 넘어갈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기사천(猉斯川)이 흐르고 있다.
[변천] 1664년(현종 5)에 유곡사를 현재의 위치에 창건하여 고려 후기의 문신 한교를 제사하였다. 1668년(현종 9) 유곡 이유택이 사망한 이후 1674년(숙종 즉위년)에는 숙종의 지시로 정려를 세웠다. 1702년(숙종 28)에 ‘향현사(鄕賢祠)’로 사액을 받았고 복호미(復戶米) 2결을 받았다. 이후 금산군수 서각수가 지은 「사우중건상량문(祠宇重建上樑文)」에 ‘1766년(영조 42) 여러 사림들의 뜻을 모아 서각수가 유곡사를 중건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유곡사는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82년에 한교와 이유택의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1988년에는 유곡서원을 복원하였다. [형태] 유곡사는 크게 2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유곡사는 입구에 ‘유곡사’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전면부는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의 사당에 주로 사용되는 형태인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바깥쪽에 있는 유곡서원은 입구에 ‘유곡서원’ 현판이 세워 있으며, 시멘트로 만들어진 일반 가옥과 같은 형태로 복원하였다.
[현황] 유곡사는 2011년 8월 16일에 금산군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매년 지방 유림에서 음력 3월 21일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정문길 언덕에 있는 이 푸른 무덤들이 눈길을 끌어 들어가 봄.













이름 때문에 들러본 마을. 여느 농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들이 넓어 풍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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