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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이야기

창원 진동리 유적[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40](20260505)

by 길철현 2026. 6. 5.

 

 

[탐방기] 이날 대구에서 거제도로 가는 길에 진동리 옆을 지나다 이 청동기 시대의 유적을 발견하게 되어 들러보았다. 창원 진동리 유적지는 고인돌로 대표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 중 고인돌 외에도 다수의 석관묘, 그리고 적석묘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8만여 기의 고인돌 중 절반인 4만여 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1위 보유국이다.   

지석묘는 고인돌의 한자어 명칭
배롱나무에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낙우송.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 나무도 처음 듣는다.

 

나무수국은 우리가 흔히 보는 수국의 정확한 명칭인 듯.

 

약간 더운 날씨에 그늘 한 점 없는 곳을 걷는 것이 상쾌하지만은 않았으나, 우리 옛 조상들의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4천 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언어는 어떠했는지, 궁금한 것이 많다. 

 

 

 

<청동기 시대 유적>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년경~기원전 1500년경 시작) 유적은 신석기 시대에 비해 해안가보다는 강을 끼고 있는 나지막한 구릉(야산)이나 내륙 분지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본격적인 농경(특히 벼농사)이 시작되면서 농사짓기 좋고 배수가 잘되는 곳에 큰 규모의 마을(취락)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권역별 주요 대표 유적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중부 지역 (한강 및 금강 유역)

농경과 주거지 유적이 대규모로 발견되는 곳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발전을 잘 보여줍니다.

  • 부여 송국리 유적: 한반도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마을 유적입니다. '송국리형 토기'와 탄화된 벼(쌀)가 발견되어 당시 벼농사가 매우 활발했음을 증명합니다.
  • 여주 흔암리 유적: 탄화된 쌀, 보리, 조 등이 발견되어 청동기 시대 중부 지역의 농경 생활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주거지 유적입니다.
  • 대전 둔산 유적 / 충주 조동리 유적: 대규모 주거지와 함께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민무늬토기, 석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2. 남부 지역 (낙동강 및 영산강 유역)

풍요로운 평야와 강을 바탕으로 대규모 농경 취락과 고인돌 무덤군이 밀집해 있습니다.

  • 진주 대평리 유적: 남강 댐 수몰 지구에서 발견된 곳으로, 밭농사 및 벼농사 유적과 환호(마을 주변에 판 도랑) 등이 대규모로 발굴되어 청동기 시대의 '도시형 마을' 구조를 보여줍니다.
  • 울주 검단리 유적: 마을 주변을 도랑(환호)으로 둘러싸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 한 방어형 취락(환호 마을)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고창 · 화순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3. 북부 및 동해안 지역

  • 파주 덕은리 유적 / 강화 부근리 지석묘: 한강 하구 및 경기·인천 지역으로 거대한 탁자식(북방식) 고인돌이 분포해 있습니다.
  • 춘천 천전리 · 신매리 유적: 신북읍 일대에서 대규모 청동기 시대 논 유적과 곡식 저장 구덩이들이 발견되어 주목받았습니다.
  • 강릉 교동 · 방동리 유적: 동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취락지로, 영동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벼농사와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청동기 유적 분포의 핵심 특징

  1.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구릉지: 신석기 시대의 '바닷가 패총' 위주에서 탈피하여, 뒤로는 야산이 있고 앞으로는 농사지을 평지와 강이 있는 구릉 지대에 마을이 분포합니다.
  2. 무덤(고인돌)의 밀집: 고창, 화순, 강화 등지뿐만 아니라 전국의 구릉지 곳곳에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고인돌이 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3. 방어 시설의 등장: 진주 대평리나 울주 검단리처럼 마을 주변에 목책(나무 울타리)이나 환호(도랑)를 두른 유적이 많습니다. 이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생기면서 부족 간의 전쟁이나 갈등이 빈번해졌음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지>

 

우리나라의 구석기 유적지는 한반도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살았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산입니다. 시기별(전기, 중기, 후기)로 전국에 걸쳐 다양한 유적지가 분포해 있는데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가장 대표적인 3대 구석기 유적지

📍 연천 전곡리 유적 (경기 연천군)

  • 특징: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꾼 엄청난 유적지입니다.
  • 의의: 이 유적지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세계 고고학계는 "유럽·아프리카에는 발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있었지만, 동아시아에는 찍개 문화만 있었다"는 모비우스 학설을 정설로 믿고 있었는데, 전곡리 발견으로 이 학설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전기 구석기 시대(아슐 문화)를 대표하는 뗀석기로, 돌의 양면을 박리해 만든 좌우대칭 형태가 특징입니다. 이름은 프랑스 생태 아슐(St. Acheul) 유적에서 주먹도끼가 많이 발견된 데서 유래했으며, 한쪽은 둥글고 반대쪽은 뾰족하게 날을 세운 형태로 설명됩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문화(Acheulean culture)’에서 주로 확인되는 양면석기(biface) 전통의 대표 유물로, 초기 인류의 석기 제작 기술을 상징하는 도구로 소개됩니다. 검색 결과에서는 주먹도끼가 사냥·채집·땅 파기  다양한 용도에 쓰였을 가능성과, 대칭적 형태 자체가 당시 인류의 기술·인지 능력 발전을 보여주는 단서로 언급됩니다.Scv+3

 

형태와 제작 특징

  • 양면 박리: 돌의 양면을 떼어내어 날을 세우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정교하고 대칭적인 개체도 존재합니다.
  • 형태 다양성: 전형적인 ‘한쪽은 둥글고 반대쪽은 뾰족한’ 대칭형 외에도, 지역·재료에 따라 두껍고 거칠게 마무리된 형태가 보고됩니다.
  • 기술의 지속: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100만  동안 이어진 초기 인류 석기 제작 기술을 대표한다고 정리됩니다.

<찍개>

 

찍개는 자갈돌이나 모난 돌의 가장자리 일부에 떼기를 가하여 날을 세운 석기 종류에 속한다. 찍개의 개념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부터 논의되었는데, 모비우스Hallam Leonard Movius는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한 면만 떼어 내서 날을 만들면 외면찍개chopper, 양면을 떼어 내서 날을 만들면 양면찍개chopping-tool로 분류하였다. 그 뒤 찍개에 대한 다양한 형식 분류가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시도되었다. 리키Mary Leakey는 날의 위치와 형태를 중심으로 외면찍개를 몸체의 길이 축을 중심으로 왼쪽 또는 오른쪽 가장자리에 날이 있는 옆찍개side chopper, 몸체 길이 축의 끝 부분에 날이 있는 끝찍개end chopper, 한 몸체의 서로 다른 위치에 날이 있는 양모서리찍개two-edged chopper, 날을 뾰족하게 만든 뾰족찍개pointed chopper, 날이 끌처럼 생긴 끌모양찍개chisel-edged로 구분하였다. 찍개는 구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제작되었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 이르는 구대륙의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찍개는 올도완 석기 문화Oldowan industry를 대표하는 석기 가운데 하나이며, 나무 또는 동물의 뼈를 찍거나 찧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수진)

📍 공주 석장리 유적 (충남 공주시)

  • 특징: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되고 정식으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입니다.
  • 의의: 1960년대 발굴 당시, 주먹도끼와 찌르개 등 전기부터 후기 구석기를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이 층위별로 나와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해 층위학적 연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 단양 금굴 유적 (충북 단양군)

  • 특징: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 추정됩니다.
  • 의의: 약 70만 년 전의 최고(最古) 층위를 가지고 있어, 한반도 구석기 문화의 시작점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2. 지역별 주요 구석기 유적지

지역 유적지명 주요 특징 및 발견 유물
북한 지역 상원 검은모루 동굴 (평양) 북한 지역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적 (약 50만 년 전)
  웅기 굴포리 (함경북도)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
  역포대현동 / 승리산 덕천 인골, 역포 인골 등 구석기 시대 **인류의 뼈(인골)**가 발견된 곳
강원 지역 양구 하리 / 홍천 하화계리 한반도 중부 내륙의 대표적인 후기 구석기 유적지 (좀돌날 등 발견)
충청 지역 청주 두루봉 동굴 완벽한 형태의 아이 뼈 화석인 **‘흥수아이’**가 발견된 곳 (국화 꽃가루가 함께 발견되어 장례 풍습 추정)
  단양 상시리 바위그늘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인골 화석이 발견된 곳
호남 지역 순천 월평 유적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규모 석기 제작 장소 (슴베찌르개 등 대량 출토)
  장흥 신북 유적

 

<구석시 시대 매장 문화>

구석기 시대의 매장 문화는 인류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본능을 넘어,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과 '추상적인 정신세계(의례, 종교적 관념)'를 갖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당시 인류는 단순히 시신을 유기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격식을 갖추어 시신을 묻었습니다. 전 세계 및 한반도의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본 구석기 시대 매장 문화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석기 시대 매장 문화의 주요 특징

  • 최초의 매장 (중기 구석기 시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신을 의도적으로 매장하기 시작한 종족은 네안데르탈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 유적인 이스라엘의 카프제 동굴,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 등에서 매장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태아 자세(굴장, 굽혀묻기): 시신의 팔다리를 가슴 쪽으로 웅크리게 해 마치 어머니 배 속의 태아와 같은 자세로 묻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삶(재생)의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야생동물로부터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구덩이를 좁게 파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 부장품과 꽃의 헌화: 죽은 이가 사후 세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석기(도구)나 동물 뼈, 조개껍데기 장신구 등을 함께 묻었습니다. 특히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무덤에서는 수많은 꽃가루 성분이 발견되어, 죽은 이를 추모하며 꽃을 뿌리는 장례 의례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 붉은 흙(오커) 살포: 시신이나 주변에 붉은색 철광석 가루(오커)를 뿌린 흔적이 자주 발견됩니다. 고대인들에게 '붉은색'은 피와 생명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죽은 이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2. 한반도의 구석기 매장 문화: 흥수굴

한반도에서 구석기 시대의 매장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은 충북 청주의 두루봉 동굴(흥수굴)입니다.

  • 흥수아이의 발견: 후기 구석기 시대(약 4만 년 전)의 인골로, 당시 5세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뼈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흥수아이'라 부릅니다.
  • 의도적인 매장의 증거: 아이의 시신은 편평한 석회암 바닥 위에 바르게 뉘어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고운 흙을 깔아 무덤을 조성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 꽃을 뿌린 흔적: 흥수아이 가슴뼈 주변의 흙을 분석한 결과, 가을철에 피는 국화과 꽃가루가 집중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 아이의 가슴 위에 꽃을 뿌려주며 애도하는 장례 의례를 치렀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요약하자면 구석기 시대의 매장 문화는 인류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을 공동체적으로 극복하고, 사후 세계나 재생을 믿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인류 정신사(史)의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신석시 시대 유적지>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약 기원전 8,000년 전~)는 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저장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농경과 목축의 문을 연 시기입니다.

강가나 바닷가 주변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유적지들 역시 대부분 물을 구하기 쉽고 해산물 채취가 유리한 곳에 분포해 있습니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지를 지역별, 특징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1.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지

  • 제주 고산리 유적
    • 의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 유적지로 평가받습니다.
    • 특징: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보여주며, 섬유질을 섞어 만든 고산리식 토기(섬유질 토기)와 이른 철촉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2. 중부 및 서해안 지역 (대표 유적)

  • 서울 암사동 유적
    • 의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대규모 집자리 유적입니다.
    • 특징: 한강 유역에 위치하여 정착 생활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으며, 땅을 파서 만든 움집터와 화덕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의 주거 환경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인천 미사리 및 서해안 패총(조개더미) 유적
    • 특징: 서해안의 섬과 바닷가(인천 영종도, 연평도 등)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쌓인 패총이 많이 발견됩니다. 이 패총은 당시의 식생활뿐만 아니라, 뼈바늘이나 조개 장신구 같은 생활 유물을 보존해 주는 '타임캡슐' 역할을 합니다.

3. 남해안 및 동해안 지역 (해양 활동과 교류)

  • 부산 동삼동 패총
    • 의의: 남해안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거대한 조개더미 유적입니다.
    • 특징: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낚싯바늘, 그물추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일본 규슈 지역의 흑요석(화산석)과 조개 팔찌 등이 출토되어, 신석기 시대에 이미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와 활발한 국제 교류를 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 양양 오산리 유적
    • 의의: 동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 중 하나입니다.
    • 특징: 흙을 구워 만든 '인면상(사람 얼굴 모양 토제품)'이 출토되어 당시 신석기인들의 원시 신앙(애니미즘, 샤머니즘)과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평평한 바닥에 겉면을 누르거나 찍어서 무늬를 낸 이른 시기의 토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4. 신석기 유적지의 핵심 특징 요약

분류 주요 유적지 출토된 대표 유물 및 의미
최고(最古) 제주 고산리 섬유질 토기, 한반도 신석기의 시작점
주거·정착 서울 암사동 대규모 움집터,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
해양·교류 부산 동삼동 패총, 흑요석 및 조개 팔찌 (일본과의 교류 증거)
예술·신앙 양양 오산리

 

<신석기 시대 매장 풍습>

 

신석기 시대의 매장 풍습은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구석기 시대보다 공동체 의식이 한층 더 강화되고,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구체화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동굴이나 자연 지형을 이용했던 구석기 시대와 달리, 신석기 시대에는 정해진 공동묘지(매장지)를 조성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신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1. 신석기 시대 매장 풍습의 주요 특징

  • 공동무덤(패총 매장)의 등장: 신석기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마을 근처나 식생활 쓰레기를 버리던 패총(조개더미)에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패총의 석회질 성분은 뼈가 썩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되도록 도와주어, 오늘날 당시의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 다양해진 장례 방식:
    • 펴묻기(신전장): 시신의 팔다리를 곧게 펴서 바르게 뉘어 묻는 방식으로, 신석기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 중 하나입니다.
    • 굽혀묻기(굴장): 구석기 시대처럼 몸을 웅크린 자세로 묻는 방식도 여전히 유행했습니다.
    • 뼈추려묻기(세골장/이차장): 시신이 완전히 썩은 후 뼈만 골라내어 항아리나 특정 장소에 다시 묻는 복합적인 장례 방식도 나타났습니다.
  • 풍부해진 부장품: 사후 세계에서도 현세와 같은 삶이 이어진다는 '계속성'을 믿었기 때문에,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빗살무늬토기, 석기(돌도끼, 화살촉), 뼈바늘, 그리고 조개껍데기나 동물 이빨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를 함께 묻어주었습니다.

2. 한반도의 대표적인 신석기 매장 유적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장례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들입니다.

① 통영 연대도 패총 유적 (우리나라 최초의 신석기 공동묘지)

  • 내용: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집단 무덤입니다. 약 15기 안팎의 인골이 발견되었습니다.
  • 특징: 시신을 바르게 펴서 묻은 '펴묻기'가 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한 남성의 인골 가슴 위치에서는 수십 개의 발이빨(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화려한 목걸이가 발견되어, 당시에도 신분이나 역할에 따른 장식의 차이가 있었거나 고인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의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

  • 내용: 남해안 해양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이곳에서도 신석기 시대 매장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특징: 시신과 함께 정교하게 가공된 조개 팔찌(투방칼조개 등으로 제작)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용도를 넘어, 특정 주술적 의미나 사후 세계에서의 평안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의미로 함께 묻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③ 울진 후포리 유적 (뼈추려묻기의 대표 사례)

  • 내용: 동해안에 위치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아주 독특한 매장 방식이 발견된 곳입니다.
  • 특징: 지름 4m 정도의 자연 구덩이 안에서 최소 40명 이상에 달하는 사람의 뼈가 한꺼번에 발견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살이 썩은 뒤 뼈만 추려 모아서 한곳에 공동 매장한 '뼈추려묻기(이차장)'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무덤 위에는 수십 점의 길쭉한 돌도끼(마제석부)를 차곡차곡 덮어놓아 장엄한 장례 의식을 치렀음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신석기 시대의 매장 풍습은 농경 정착 생활을 통해 형성된 **'씨족 및 부족 공동체의 유대감'**이 죽은 뒤에도 이어진다고 믿었던 그들의 종교적·정신적 성장을 생생하게 증명해 줍니다.

<철기 시대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철기 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5세기(BC 5세기)경부터입니다.

철기 문화의 전개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5세기 ~ 기원전 1세기): 중국의 고조선과 연나라 등의 교류를 통해 철기가 처음 유입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철기가 아직 귀했기 때문에 주로 무기나 의기(제사용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농기구는 여전히 석기나 청동기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청동기 문화도 함께 독자적으로 발전(세형동검 등)했던 과도기적 시기입니다.
  • 본격적인 철기 시대 (기원전 1세기 이후): 기원전 2세기 말 위만조선의 성립과 한사군의 설치 등을 거치면서 철기 생산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농기구까지 철기로 만들어지면서 농업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한반도 남부의 삼한(특히 변한) 등에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낙랑이나 왜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철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기원전 5세기 무렵이며,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본격적인 철기 시대로 접어든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