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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1022) 소리와 분노

by 길철현 2016. 10. 22.


요즈음은 의욕 과잉인지 아니면 수면 장애인지, 수면 시간이 좀 줄었다. 여섯 시간을 채 못 자는 듯하다.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은 네 시간, 혹은 그 이하도 잔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일곱 시간 정도가 적정한 듯하다.

 

시간이 없어서 못 잔다면 이해가 될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다소 과도하다고 할 수 있는 운동량 때문에 피로를 달고 산다. 스포츠 마사지를 자주 받는 것도 여기저기서 근육이 신음소리를 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사지가 피로한 몸에 휴식의 시간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제도 피로한 몸으로 책상에 앉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자리에 누웠는데, 욕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시발년'(비속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그것이 나의, 우리의 현실이기에 있는 그대로 적는다. 이 욕설은 그 전날 식당에 갔다가 30대의 부부가 말싸움을 하는 장면과 연결이 된다. 다소 예쁘장하게 생긴 30대 중반 - 나이는 대화 중에 나왔던 것인데, 내 눈에는 그보다도 더 어려보였다 -의 여성이 취해서 그런지, 아주 거친 욕설들을 뱉어냈다. 지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개시발, 좆도, 개새끼? 등등의 말이 나왔던 듯하다. 욕보다도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거북해서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 여자를, 혹은 그 부부를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며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야기가 옆으로 세는데 우리는 다소 금기시되는 욕설이 뜻밖의 상황에서 나오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있었던 비근한 예를 들자면, 영시 구절 중 "she follows"라는 부분에서 학생들도 크게 웃었고, 내가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더 크게 읽자 학생들은 더 큰 소리로 또 웃었다.)을 필두로 너무나도 입에 익은 욕설들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아파트라는 공유의 공간에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고함도 몇 번 질렀다. (마음이 힘든 시기에 설경구가 [박하사탕]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말 목청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 안이 가장 무난한 장소였지만 - 그래서 가끔씩은 소리를 지르지만 - 인적이 없는 곳에 가서 마음껏 고함을 치고 싶은데, 의외로 마음 놓고 고함을 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음껏 고함을 칠 수 있는 곳을 제공해 드립니다, 방음 시설이 잘 된 그런 곳이 있다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 분노 혹은 답답함이 현재 나의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정신분석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나의 어린시절의 정신적 외상과 더욱 밀접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느낌 -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만은 - 어쩌면 이 느낌이 내 수면을 방해하는 지도 모르겠다(한 번 길을 놓친 정신이 어디로 튈지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데. 며칠 전 우리집 부근에 있는 오패산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이 그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숙면이 아니라, 균형을 잃은 정신은 불면으로 또는 과면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이만큼 글을 썼으니 내 화난 정신을 달래어 좀 더 자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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