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흔히 하는 말 중에 '언어를 넘어서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상당한 고찰이 필요하겠지만, 아이러니컬 한 것은 '언어를 넘어서라'는 말 조차도 언어를 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생각해 보자.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 같은데, '언어라는 것이 믿고 따를 만한 것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모순 위에 서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 말이 성립하려면 '믿지 못할 언어를 일단은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상이 이어지는데, 하나 더 제시해보면, '어떤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다"라고 말했다'라는 말은 우리의 형식 논리를 깨어버린다.
우리의 언어가 제시하는 세계상이나 언어에 이끌리는 우리의 생각이 굳건한 토대 위에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인간) 존재의 집'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언어가 상징 체계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일단은 우리의 언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나가야 한다.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이런 생각들이 깔려 있을 것이다.
시인이나 과학자들은 이 언어 혹은 기호를 그 극단으로까지 밀고나가는 사람들일 것인데, 그 가운데 세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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