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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1103) 밤비노의 저주가 풀리던 날

by 길철현 2016. 11. 4.

제목을 이렇게 적어 놓은 다음 인터넷을 찾아 보니, 내가 그 동안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비노의 저주는 보스턴 레드 삭스가 홈런 타자로 유명한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이적시킨 다음 생긴 것이고, 시카고 컵스에게 있는 저주는 '염소의 저주'였다. 시카고 컵스의 열렬한 팬인 윌리엄 시아니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염소 '머피'와 함께 야구장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하자, '시카고 컵스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저주를 퍼부었다는 것이다.


그 후 108년 동안 시카고 컵스는 정말로 한 번도 우승을 못하는 불운에 빠졌다. 미국 프로야구는 물론이거니와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도 큰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 코리안 시리즈는 싱겁게도 두산이 NC를 4대 0으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 저주가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팀의 시합인 경우, 사람들은 주로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것인가?


하지만 상대팀인 클리브랜드 인디언스도 '와후 추장의 저주'인지 때문에 68년 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어서, 올해 미국의 월드 시리즈(건방진 이름이구먼!)는 저주에 걸린 두 팀 간의 맞대결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이 두 팀의 경기를 쫓아가며 본 것은 아니었다. 시카고 컵스가 1승 3패로 막판에 몰렸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는데, 오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MBC에서 하는 중계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3승 3패에 마지막 경기를 펼치고 있었는데, 경기는 벌써 7회 말이었고 시카고 컵스가 6대 3으로 앞서고 있었다.


드디어 108년을 끌어온 저주가 풀리는 모양이군, 얼마 안 있어 끝날 것이니 조금만 보자.


하지만 경기 자체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라,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내 할 일은 하기 시작했다. 8회말에 잘 던지던 레스터라는 선수를 챕먼이라는 흑인 선수로 바꿨는데 시속이 100마일(160킬로미터)가 넘는 강속구 투수였다. 5,6차전에서 맹활약을 했다고 하는데,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공의 속도가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다. 적시타와 홈런 등을 허용하더니 3점을 내주어 게임은 6대 6, 동률이 되고 말았다.


염소의 저주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그런 것인가?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마사지를 받으러 의정부로 향했다. 아주 싼 가격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곳이라, 거리는 멀었지만 피로한 몸을 풀기에는 최적이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휴대폰에서 해주는 중계를 들었는데, 9회말까지 동점. 중간에 비까지 와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정말. 피를 말리는 접전이구나.


두 시간이나 몸을 마사지사에게 맡긴 뒤 가벼워진 몸으로 나오면서 휴대폰을 켜보니, 시카고 컵스가 8대 7로 이긴 것으로 나왔다. 브로드스트?인가 누군가가 10회초에 적시타를 쳤단다.


왜 남의 나라 경기 결과에 안달복달 하는지?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잘하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박찬호가 그 시발점이었지.


문화적인 종속,


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지만, 나든 타인이든 저주를 푼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옥죄고 있는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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