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3월 30일)--에드워드 베르, 김의경, 이미연 옮김(예전)
저널리스트의 글은 간략*명료한 반면, 깊이가 없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그랬고, 이 작품도 그렇다. 그것은 그들 직업이 갖는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렇다면 그들 작품에서 문학성을 찾기란 어렵다는 말도 된다.
이 글을 읽고 나서도 마지막 황제 푸이의 윤곽이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다. 우선 표면적으로 그의 생애를 간추려 보자면, 세 살 때 황제에 즉위, 1911년 이후에는 중국의 혁명으로 실질적인 황권을 상실한 채 지내다가 1922년 결혼을 하지만 두 명의 아내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 자신의 동성애적 성격 때문이었는 지는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지만, 성적으로 푸이는 여성과 원만하지 못했다는 건 틀림없다. 천진으로 옮겨가 몰락한 귀족으로 안일한 나날을 보내던 푸이는 일본인들의 교사로 만주국의 황제가 된다.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이 한갖 일본의 꼭두각시라는 걸 깨닫게 되지만 별다른 방책이 없다. 일본의 패배로 이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푸이는 소련 감방에 잠시 죄수로 투옥 되었다가 중국 정부에 넘겨져 십 년간을 감옥에서 보낸다. 출감한 푸이는 나머지 여생을 거의 자신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를 집필하는데 보낸다.
그의 자서전 제목이 시시하는 것처럼 푸이는 정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가 그러한 변화를 통해 뭔가를 배웠는가 하는 점은 분명치 않다. 에드워드 베르의 이 책에서도 그 점은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지 않다. 하나 분명한 점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로 돌아가려는 몸부림, 그것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뿐이다. 기질적으로 연약한 성격의 인물로 보일 따름이다.
황제 푸이의 삶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과연 정의란 존재할 수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이 그토록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행했던 마르크시즘은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일본의 패배로 일본은 악한 자의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아편을 더 팔아먹기 위해 중국과 전쟁을 벌인 영국의 행위도 결코 정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이 그들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국가의 황제로 등극해서 실지로 통치는 해보지도 못하고, 청을 설립한 누르하치가 보았으면 가소로운 웃음을 터뜨렸을 비겁한 인간 푸이, 하지만 그것도 인간 생존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웃음 이전에 비애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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