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장 쓰기 ---이 오덕, 한길사(1992)
이 오덕 씨의 이 책은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또 어떤 부분은 일면적인 고찰에 대한 비난의 여지가 많다. 어쨌거나 이 책이 나의 글쓰기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칭찬과 비난 중에서 어느 부분을 먼저 쓰야 할지 망설여 지지만 같은 값이라면 좋은 말부터 하는 것이 상례니 그렇게 하기로 하자. 먼저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이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 점을 들어야 겠다. 한자는 우리 글로써 몇천 년 간이나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해 나갈 것이지만, 또 일제 강점으로 인한 일본어의 유입에 대해서는 별달리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점이다. 예를 들어 종결 어미를 ‘--다’로 한다던지, ‘--의’ 또는 ‘--적’이라는 말은 모두 일본어의 영향이라는 것 등(이 ‘등’이라는 말도 그렇다.)은 이전에는 잘 알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이 이것은 누구 나라 말, 저것은 누구 나라 말, 이렇게 쉽게 딱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와의 혼용과 비교가 없이는 발전해 나가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물론 이오덕씨의 말은 다른 언어의 유입을 완전히 봉쇄하자는 말이 아니고, 다른 말 때문에 오염된 우리 말을 정화하자는 견해지만, 말이라는 것은 일 개인의 주장이나 옳고 그름과는 관계가 없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일본의 강점을 지금와서 돌이킬 수 없듯이, 일본어가 우리 언어에 미친 영향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 현상에 옳고 그름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좀 건방진 일이라는 것이 나의 단견이다. 미국 영화를 보다보면 영어가 상당히 거칠어 지고, 속어나 은어의 사용도 굉장히 확대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건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영어가 변해가는 방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오덕씨는 이런 걸 보면 언어가 난폭해지는 것은 인간의 심성이 거칠어 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로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칭찬을 쓴다는 것이 그만 이상한 곳까지 흘러오고 말았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점이 많은 흥미로운 문제다. 이까지 적고 보니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이오덕씨는 학교 훈장의 때를 벗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옳다. 그르다. 이래라. 저래라. 삶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말을 사용해야 하는 까닭, 굳이 중국 한자어를 쓸 필요가 없는 까닭, 일본어가 우리 언어에 끼친 해악 등을 논리적으로 펼쳐간 부분은 수긍이 가는 글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자극을 준 부분은 일기쓰기에 관한 부분이다. 일기쓰기가 글쓰기의 기본이요, 일기쓰기를 통해 모든 글쓰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이오덕씨처럼 명료하고 가슴에 와닿게 이야기해 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
그 다음에는 비난을 해야 할 부분이다. 이 부분은 이오덕씨와 나와의 인생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나로서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관이 글에 투영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다(물론 인생을 사실만큼 사신 분이니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삶을 어떻게 보는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벌써 뚜렷한 해답을 가지고 씨는 글을 써나가는 데 많은 사람들에겐 삶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부터 막힌다는 걸 이해해 주어야 할 것이다. 뒤엉키고 뒤엉켜 어느 것이 머리고 어느 것이 꼬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얼마전에 읽은 정찬씨의 작품엔 그게 잘 드러나 있다) 그걸 너무 단순하게 이분법적인 사고로 본다는 것은 좀 더 세련된 사고를 하는 사람에겐 비웃음을 살 요소가, 단순하게 사고하는 사람에겐 위험스런 행동을 유발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흐리다고 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길은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시를 논한 부분에서는(서둘러 써서 그런지, 아니면 시에 대한 소양이 일천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위론 적인 이야기 밖에는 없었다.
--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글이란 모름지기 말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글이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써야 한다는 당위론 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의 글쓰기는 그 정도도 못해왔기 때문에 이오덕씨의 말이 설득력을 지닌다.
'책을 읽고 > 독서일기95-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시앙 골드만 - 숨은 신(연구사) [1995년] (0) | 2016.11.29 |
---|---|
김현 - 행복한 책읽기 (1995년 9월) (0) | 2016.11.29 |
버트란드 러셀 -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 -- Bertrand Russel(Unwin)] (1995년) (0) | 2016.11.29 |
이벤허 - 중국인의 생활과 문화. 김영사 (995년) (0) | 2016.11.29 |
에드워드 베르 - 마지막 황제 (1995년 3월) (0) | 2016.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