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제 2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대상 --박상우, 내 마음의 옥탑방(문학사상사) 990629--990630
문학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걸 얼마 전에 <Poetry for You>를 읽으며 재확인했다. 문학은 문화의 중심에서 이제는 영상 매체에게 그 중심을 넘겨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문학은 언어의 선봉에서 자기 몫을 찾아가리라.
풍요와 위기감이 교차했던 90년대도 이제 막을 내린다. 새로운 천 년은 정확히 말하자면 2001년에 시작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2000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리라. 90년대와, 천 년을 마감하는 이 자리에서, 올해의 좋은 소설로 뽑힌 작품들은 우리 문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작품이라고 작년의 작품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이상문학상>에서 한 동안 페미니즘적인 냄새가(특히 작년의 대상작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와, 김형경의 <담배를 피우는 여자> 등) 나는 듯 하더니, 이제 다시 계급의 문제가 부각되는 듯하다. 올리펀트가 그녀의 소설 <Curate in Charge>에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라고 한 말이 한 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소설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경제적 격차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정치 투쟁, 노동자 투쟁의 소설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계급성이랄까, 문제의 해결을 찾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리라. 물론 이 문제는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좀 더 공구해야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은 그러하고, 다시 글을 쓴다 하더라도 나의 이 아이디어를 좀 더 공고히 하는 것이리라. 우리 소설에서 안타까운 것은 ‘실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설은 아직도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한 번 쓰여진 것 보다는 좀 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1. 박상우--내 마음의 옥탑방
작년의 대상작,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나, 3년전의 대상작 윤대녕의 ‘천지간’과 비교해볼 때 이 작품의 작가는 아직 붓이 무르익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우선 나를 스친다. 심사 위원들은 ‘공간화의 기법을 통해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담겨 있는 세속적인 욕망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정확히 형상화 되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이 글에는 두 인물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나(민수)와 내가 사랑하는 여자인 주희. 나는 국문과를 졸업하여, 형의 소개로 레포츠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취직해 있으며, 주희라는 여자는 내가 출입하는 백화점의 안내에 근무하는 아가씨이다. 영업 실적이 저조하여 백화점 5, 6층에 자리잡고 있는 매장에 올라가는 것과, 사장실이 있는 11층, 또 내가 얹혀 살고 있는 형의 아파트 17층, 이렇게 높은 곳에 공포를 안고 있던 나는 그녀에게 마음의 위안을 구하기라도 하려는 듯 접근을 한다. 나는 그녀와 한 달여를 사귀지만 그녀에게 조금도 더 가까워지지 못해 헤어지려고 하는데, 그녀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놀랍게도 그녀가 살던 곳은 당시로는 생경하달 수 있는 옥탑방(나는 십 년 전의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이 옥탑방에서 내려와 ‘지상의 주민’이 되는 것인 반면에, 내가 이 옥탑방이 있는 옥상에다 회사의 레저 용품 세트를 가져와 별장을 만든 뒤에는, 나에게는 이 옥탑방이 있는 옥상이 지상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에서 벗어난 피난처 역할을 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녀의 꿈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은 카뮈가 쓴 <시지프의 신화>를 읽어나간다.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그의 고뇌를 이루었을 명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킨다.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45)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진다. 알고 보니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여동생은 이모집에 맡기고. 그녀의 꿈은 사랑보다도, 지상의 주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진실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목적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거세당한 시지프들, 산정을 향해 바위를 밀어올리는 불굴의 의지를 상실한 시지프들이었다. 신을 향한 멸시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반항적인 분투가 사라지고, 이제 지상에는 인간에 이한 인간을 위한 인간이 멸시가 범람하고 있을 뿐이었다. (53)
그럼에도 나는 ‘주희의 꿈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아파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이 확인되고, 그녀는 점점 더 자주 외박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그는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오지 않고, 급기야는 다니던 직장에서 마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나는 형의 중매로 결혼을 하고, 대기업의 홍보실로 직장을 옮긴다.
다시 한 번 심사평을 인용한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세속적인 내면 욕망’을 잘 재현해 내었다고 한다. 그 보다는 ‘옥탑방’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이중적인 상징성이 시적인 이미지로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옥탑방에서라도 그녀와 함께라면 기꺼이 살아가겠다는 나와, 아무리 나를 사랑하더라도 옥탑방에서는 살 수 없다는 그녀, 이런 대별은 너무 도식적일까?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이 안고 있는 문제는 다시 <Wuthering Heights>의 캐서린이 안고 있었던 문제와도 대비된다. 그녀는 히스클리프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그와 결혼을 한다면 거지가 되고 말 입장이기 때문에 그와 결혼을 못한다. 이 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연출하는 드라마, 그 열정이나 광기를 비교해볼 때, 이 두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은 상당히 침착하다.
이 두 인물의 결합을 막는 것은 ‘지상의 주민,’ 탁 까놓고 말하자면,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주희의 꿈이다. 주희 자신도 그 꿈이 진실도 감정도 없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그 꿈이 무너진 삶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은 인간의 정열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박상우 소설은 아직도 나에게 낯설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어딘가 모르게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드는 곳이 있고, 또 지난 번에 읽은 <말무리 반도> 같은 것은 너무 통속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나를 때린다. 뭘 하고 있느냐? 부지런히 쓰라.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2. 박상우, 내 혈관 속의 창백한 시(詩)
이 작품도 나와 여자, 그리고 가족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나는 차남으로 형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긴 그런 인물이다. 그래서, 거기에 반항하느라 제멋대로 행동을 한다. 나는 형의 사고소식을 듣고난 뒤 집에서 빠져나와 예전에 동서하던 은지라는 여자를 찾아간다. 술과 정신적인 동공 상태에서 그는 은지를 목졸라 죽인다.
이 작품은 부나비처럼 살아가는 인생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삶에 아무런 목적 의식도 느낄 수 없는 사랑을 빼앗긴 한 인물의 모습을 그려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정확히 와닿지 않는다.
3.김인숙, 물 위에서
김인숙의 이 작품은 이순원의 <1978년 겨울, 슬픈 직녀>와 일맥 상통하는 데가 있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지은이 시대적으로 더 뒤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은은 영화관 매표소에서 일을 하는 아가씨로 유부남인 대학강사 태민과 불륜의 관계이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날 태민이 자신을 한적한 곳으로 불러 갔더니, 태민이 친구들과 매운탕을 먹는 곳이었다. 매운탕을 먹고 태민과 그 친구들이 고스톱을 치는 사이의 회상이 그 내용이다. 지은은 친구 윤숙의 소개로 유부남인 태민을 만나 그의 애인이 된다. 하지만 태민에게 그녀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그냥 심심풀이로 만나는 그런 인물이다. 한 때 윤숙과 사귀던 김이라는 인물은 아내 친구에게 자신들의 밀회를 들키자 헤어지고 만다. 태민은 지금 아내와 이혼한 상태였다.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 그를 힘껏 껴안지만, 그는 나를 뿌리치고 만다. 그와 나의 관계는 끝장이 난 것이다.
사회적으로 하층 계급의 여자와 중상류층 유부남과의 관계, 여자는 남자의 경제를 원하고, 남자는 여자의 몸을 원하겠지. 이러한 관계에서의 거리감을 이 작품은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작품이다.
4.배수아,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줄거리>
북한의 과학자인 김얀(무사)은 남한과 북한 정부의 묵계 하에 서울에서 연구를 한다. 그로서는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신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고, 또 북한의 대학을 돕는 일도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외교관인 북한의 엘리트 계층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라났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왔다. 아내와 서신 교환도 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인적 사항을 비밀로 하는 대신에, 자신의 연구와 그 결과를 부지런히 발표하고,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도 계획대로 진척되어 나갔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소환대고, 아내와 자식도 평양에서 국경 근처 어디론가 추방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을 느낀 김얀은 자신과 접촉하고 있던 남한의 정보부와 북한의 정보부 요원과의 접촉을 시도하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남한 정보부의 요원인 박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국장의 딸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혼 생활이 흔들리고, 그는 타이피스트인 곽과 정을 통한다. 박은 김얀이 남한에서 생활하는 것을 맡아보던 인물이었다.
박의 정부인 곽은 폐병환자인 전직 물리 선생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김얀이 있는 집 아래층에 세를 든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김은 북으로 돌아가 굶주리는 아들을 구하고자 하나 방법이 없다. 그는 북의 에이전트인 닥터 리를 통해 여러 통의 편지를 부치는 데, 그 중 하나가 자유주의 비밀 결사에 소속되어 있는 친구에 날아간다. 그 친구는 김을 이런 곤경에 방치한 박을 죽이기로 하는데, 정작 죽는 것은 곽이었다.
<평>
착상이 재미있긴 하지만 끝부분이 너무 모호하다. 붓이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 힘을 발휘한다기보다는 흩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아무도 정치적인 삶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뭔가 구심점이 있어야 할 텐데, 작품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박과 곽의 이야기가 삽입됨으로 해서 흐트려지는 그런 인상을 준다.
참고-- <와이셔츠> 세계의 문학
5.원재길, 삼촌의 좌절과 영광 (생략)
6.이순원, 1978년 겨울 슬픈 직녀
<줄거리>
나는 집시법 위반 혐의로 강제 징집 된 인물이다. 혹한기 훈련을 받던 중 그만 총기 오발을 해서 영창을 간다. 훈련을 받는 와중에 대대장의 숙소로 중사와 간부들이 다방 여자를 데리곤 온 것에 대한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고를 일으킨 듯 하다. 이 일로 나는 헌병대 영창을 가는데, 영창을 가 있는 사이에, 애인이 면회를 온다. 그녀는 알고 보니 어릴 때 고향 옆집 친구인 정기숙이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찾아온 사정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서울의 직물 공장에 취직해서 베 짜는 일을 하던 중, 일본인 바이어의 눈에 띄여, 결국 그녀는 나이가 많은 그의 여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평>
이 작품은 심사위원단의 지적도 있었지만, 앞 부분과 뒷부분의 유기적 연결성이 약하고, 또 자칫 잘못하면, 감상적이 되고 말 이야기이다. 이순원의 글솜씨가 이 작품을 어느 정도 살려내고는 있지만, <말을 찾아서>나 <수색, --->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움과 아련함이 부족하다.
<참고>
말을 찾아서
수색, 어머니의 가슴으로 흐르는 무늬?
<착상>
군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읽고 정리해 볼 것.
7. 이윤기, 손가락
<줄거리>
나와 한교수는 이웃에 산다. 한교수를 따라 MT에 온 내가 한 교수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한교수는 식물에 도통한 인물이지만, 그는 또 논리적 허구, 혹은 논리의 오작동으로 사람을 쓰러뜨린다. 사람들의 그의 말의 허구에 쉽사리 속아넘어 간다는 것이었다.
<평>
이윤기는 근년에 들어서 번역보다는 소설 쪽에 훨씬 더 힘을 쏟고 있는 느낌이다. 작품들이 실험성은 돋보이지 않지만, 도통한 느낌은 준다. 지금껏 읽은 것이 모두 ‘인생의 도’와 ‘언어의 힘과 거짓’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는 극적인 맛이 없다. 뭔가 우리를 감동시킨다기 보다는 우리를 가르친다. 소설에서 가르침을 받기 보다는 감동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
나비 넥타이
8.허성란, 당신의 백미러
<줄거리>
남자는 의류 종합 매장의 감시원이다. 그는 도벽이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지만 눈감아 준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가는데, 그녀는 이태원의 <라스 베이거스>에서 일하는 마술사이다. 그의 조수 역할을 하던 남자는 봉급을 삭감 당하자, 물건을 훔쳐내고, 그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가는 길에 사고가 난다. 그 와중에 남자는 그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걸 본다.
남자는 사고로 뇌를 다쳐 기억을 회복하지 못한다. 어느 날 병원에서 마주친 장발의 사내가 남자를 보고 웃음짓지만, 남자는 사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평>
이 작품도 끝부분에 와서 이상한 이야기로 흘러 버렸다. 문체가 독특하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좀 황당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
9. 최일남, 우리말 역순사전
<줄거리>
늘그막으로 들어선 강진동 씨는 흐릿해지는 기억력과 말의 얽힘 때문에 곤란을 느낀다. 그렇지만, 동네에 있는 의사는 그다지 중요성을 두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루는 수몰된 자신의 고향으로 갔다가, 간첩으로 오인 받아, 경찰에 의해 연행될 뻔한 일도 있었다.
<평>
최일남의 작품은 내가 좋아하기가 힘들다. 그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흐르는 북>마저 나에게는 별로였다. 이 작품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10.한승원, 검은댕기두루미
<줄거리>
일가족의 이야기이다. 누나와 동생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누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
회상 속의 누나는 재수생. 그녀는 재수를 하느라 들랑거린 학원 앞의 만두집에서 일하던 김군이라는 남자와 사귀게 되는데, 그를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서울의 가죽점에 취직하게 한다. 재수에 실패한 그녀도 서울로 올라와 세 사람은 같이 지내게 되는데, 어머니가 어느 샌가 김군을 유혹하고 말았다. 김군을 둘러싼 싸움에서 그녀는 어머니에게 패하고 골탕만 먹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떠났다.
이제 죽으려고 이 한적한 곳에 내려와 있는 그녀에게 동생이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할 수 없어서 방안에 가두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 곳으로 데려와 빈 집에 묵게하라고 한다.
<평>
가족 간의 애증을 그린 작품. 한 승원 씨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초적인 성이 작품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그걸 둘러싸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에 삽입된 <여우>이야기는 시사하는 바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무척 흥미롭다.
글을 읽고, 그걸 글로 정리하는 작업, 시간도 걸리고, 그다지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그래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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