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서서 우는 마음, 청년 정신 000630
애절함은 느껴지지만 그것이 울림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시집을 다 읽고 난 전체적인 느낌이다. 몇 편의 시들은 ‘시인의 영혼이 어떤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좁은 방 안으로 들어갈 때 그가 토하는 슬픔, 사랑, 이별과 같은 추상적 언어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장식적 수사에 머물러 비슷한 표현으로 반복되기 쉽다’는 백지연의 평이 적절하다는 생각도 든다(그 구체적인 시편으로 언뜻 떠오르는 것이 ‘세월의 현기증’이다). 이 시집에서 뭔가 새로운 정신, 혹은 세계를 발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그래서, 훌륭한 시집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몇 편의 시들은 아름답다. 첫 시 ‘너에게’는 그런대로 가슴에 와닿는다.(이런 정도의 시 한 편을 쓴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시라는 매개는 타인과의 통교를 얼마나 어렵게 하는가. 반면에 그 통교는 얼마나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 지는가)
울음은 어디에 닿아있는가
지고 새로 돋는 꽃대 위로 구르는 바람 한자락에도 마음은 무너져 부시어라만. 너 성한 곳만 딛고서도 온전히 건널 수 없는 험난이 이 세상에는 있어, 되려 헐어있는 이 마음의 빈터가 아득토록 적막할 뿐이어라. 오늘은 모로 잠을 청하여도 베개 끝이 절벽이라. 다시 병든 짐승처럼 앉아 외로운 꿈을 달래자니, 곱던 단풍도 손잡고 돌아들가고 빠알갛게 달아오른 두 눈만이 동백 미어지는 골로 발을 돌린다. 참 많은 울음으로도 건너지 못할 이 세상. 마음밭에 돋는 이 무진장 서리 밟고가면
아무도 이르지 못할 깊은잠 있을런가
일생 울음 다한 고요가 있을런가
삶의 험난과 고통을 지나 구원 내지는 평온을 갈망하는 그런 마음을 잘 형상해낸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목소리보다, 시의 목소리가 큰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시를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쉬임 없이 읽어나가도록 하자.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라. 가다보면 알게 될 때도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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