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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김정란.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 보네, 세계사, 97 (2000년 8월 29)

by 길철현 2016. 12. 1.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 보네, 세계사, 97 (2000829)

<경계에서 안으로, 혹은 밖으로>

김정란의 이 세 번째 시집은 그녀가 그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목소리가, 어느 ’(그녀의 말을 빌면)에 다가간 느낌을 준다. 그녀가 오랜 시간 찾아헤매었든 존재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포착된 듯하기도 하다.

 

나는 본다, 푸르스름한 유령처럼 당신이 내 앞에 스치듯 부드럽게 와 앉는 것.

오 칼칼해라 그대, 육체 없는 현존, 없으면서도 이토록 칼칼하게 내 마음을 다 후벼내는 없는 있음, 있는 없음, 언제부터인지 나는 결핍으로 울지 않는다, 내 그리움의 아름다움이 내 존재를 성큼 승격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내면의 천사> 부분

 

이 시집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자서>에서 밝히고 있는 말에 섬세하게 귀기울이는 것이 전제이다.

 

내 영혼은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다. 치받치는 강렬한 내면의 자아의 말, 내가 세계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짓눌러두었던 그 여자의 말이 절대로 입을 다물지 않아끼 때문이다. . . .

 

. . . .내 안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소외된 힘의 정당성에 대해 이토록 끈질기게 이의 제기를 하는 이 여자를, 영혼의 누이, 이 부드러우면서 견고하고 못된 이 여자를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나는 그녀를 껴안고 쩔쩔맸다. . . .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확실한 맥을 낚아챘다. 그리고 더이상 남자들이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여자의 간곡한 말을 듣는 것이 세계에 대한 배반이 아니며, 남자들을 내 삶으로부터 내어쫒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가장 많이 여자가 됨으로써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녀는 이 시집은 카톨릭 성인이면서도 당대에는 이단으로 몰렸던 영성신비가 십자가의 성요한의 영혼성숙의 도정을 따라 편집되어 있으며, ‘내가 시로써 보이고자 하는 바는, 예술적 적성의 과시가 아니라, 한 영혼의 싸움의 도정이었으므로작품으로써 지지부진한 타작들까지도 버리지 않고 시집에 끼워넣었다고 밝히고 있다. <자서>를 통해 우리는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과, 시집의 체제를 구체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가 <자서>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시집을 설명하는 것은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그녀가 시에서 말하는 바를 우리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 것, 혹은 그 난해함에 어리둥절하게 될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이 시집의 많은 시들이 <도시>(4), <雪國>(6), <이미지들>(10), <여자의 말>(9)이라는 동일 제목에 다른 부제를 가진 시라는 점이다. <도시>는 그녀에게 있어서 남성들의 세계로 보이는 부정적인 그런 것이다. 이것은 <이미지들--밖으로 나간 여자, 세기말의 사랑>에서 빌딩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보여진다.

 

#3 도시 한복판. #2에서와 같은 앵글. 빌딩들이 늘어 서 있는 큰길. 새벽 어스름. 양 옆 정면에 두 채의 높은 빌딩이 서 있다.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색깔과 형태. 정면에 있는 두 채의 빌딩들 사이로 피를 뚝뚝 흘리는 거대한 검은 여자가 하나 나타난다. 여자 처음엔 비틀거리다가 똑바로 선다. 여자 견고하게 버티고 선 뒤, 천천히, 힘들게 두 팔을 펼쳐서 두 채의 빌딩을 감싸안는다. 빌딩 벽 위로 끈적이는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태양이 여자의 머리 뒤로 서서히 솟아오른다. 갑자기 여자가 빌딩을 껴안은 채 쓰러진다. 빌딩들 굉음을 내며 부서진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

--부분

 

반면에 雪國은 도시의 부정적인 남성적 세계관과는 다른 것으로 그려진다.

 

내가 도시의 거리를 뒤지고 돌아다니며

쓰레기통과 하수구 사이에서 넘어지며

문득 가슴에 펑펑 내리는 저 참혹히 아름다운

눈의 나라를 견디며 살아 있나이다

--<雪國--어리석은 사랑> 부분

 

그리고 <여자의 말> 시편들은 가장 많이 여자가 됨으로써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는 것을 시로서 형상화하려는 처절한? 시도이다. 대체로 <여자의 말>이 나오는 것은 사이균열(‘이나 도 마찬가지 말이다)’의 어떤 순간이다. 이 순간에 여자는 자기의 몸을 지우면서 당신 혹은 그를 본다. (이 당신 혹은 그는 [다시 시작하는 나비]에서는 존재라는 말을 쓰기도 했으며, [겹칩, 혹은 매혹]에서는 오르페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여자의 말--존재의 內臟 속으로>에서는 자신의 소외된 힘의 정당성을 이토록 끈질기게 이의 제기를 하는 이 여자의 육화된 모습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이 시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역사 속에서 언제나 구박당한여성의 영혼의 처참한 모습을 바로앞에서 보는 듯이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통 피로 뒤범벅이 되어 근원의 어느 뻘밭에

죽어라 박혀 있는 존재이 내장 속에 코를 박고

그것들의 끈적이는 분비물로 엉망이 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는 자랑스럽게

통치마폭을 흔들었다 봐 난 이걸 별로 만들 거야

--부분)

 

많은 시들은 그녀가 <자서>에서 밝힌 말과, 그녀가 이전의 두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시적 어법을 좇아서 읽을 경우 대충의 윤곽을 찾을 수는 있다. 그리고 몇몇 시들은 그런 것 없이도 시 자체가 제시하는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나는 상처들을 간수한다 아니다 나는 상처들을 만든 시간들을 몸이었든 시간들을 간수한다 그것들 나를 사정없이 파내지 나는 <내장적 슬픔>이라고 말해본다 그 말은 내 마음에 들어 도대체 너는 왜 각질이 생기지 않는 거냐 이 지독한 현장의 형식이여 웃으면서 나는 나의 슬픔에게 말한다 어쨌든 대단하구나 죽어도 몸으로 끝까지 때워내겠다는 거지 몸속에서 웬 짐승들이 울부짖는다 그 아가리에서 지옥의 불이 넘실거려 나는 속수무책이야 뼈들이 빠지직빠지직 갈라져 그래도 나는 빛을 부르지 않는다

--<상처들, >

 

그럼에도, 그녀의 시를 읽는 것은 쉬운 노릇은 아니며, 또 후반부의 읽기 쉬운 희곡이나 시나리오 형식의 시들은, 시로서의 성취도에 의문이 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이 시집은 한 영혼이 그것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어떤 것과의 싸움의 도정을 보여주겠다는 시인의 의도에는 부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것이 시 형식 또는 시 어법에서 어느 정도 일탈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리라. 그녀의 많은 언어는 모순 형용(Oxymoron)에 기대고 있다.

 

그리곤 들리지 않는 소리의 왕국에서 작은 핏톨들 밑의 보이지 않는 다른 핏톨들이 왕왕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雪國--검은 반점들> 부분

지워진 글씨들 침묵의 혀로

말하기 시작한다

--<첫 눈> 부분

 

모순 형용의 지나친 사용은 그녀의 시적인 테크닉이 부족이나 단조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물론 황현산은 다음과 같이 그녀의 시어를 옹호하고 있다.

 

김정란의 시는 또한 반은유*반상징의 언어라는 점에서 새롭다. 은유와 상징의 시는 스스로 도달하려는 전대미문의 광휘를 그 은유와 상징의 뒤에, 어두운 무덤 뒤에 은폐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의 모순을 살아간다. 김정란의 직의어, 그러나 입체적*동시적 구성력을 지닌 이 직의어들은 반시와 시가, 광란과 질서가, 현실의 껄끄러움과 일락의 꿈이 빚는 그 줄기찬 알력을 순간마다 재조정하여, 상징주의가 어둠 속에 은폐했던 힘들을 현재 속에 끌어내려 활성화하려는 미세 변증법의 실천이다.

(책 뒷표지))

 

또 더 나아가 어떤 표현들은 설명에 머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무덤>이라고, 누군가가 말 아닌 말, 지금까지 알려진 바의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말로 말한다. 인식의 화면에 막바로 떠오르는 말.

--<이미지들--금빛 황토, 여자의 몫인 죽음과 (영역)>

 

다수의 이러한 표현들 때문에, 김정란의 시는 뭔가를 제시하기 보다는 설명하고 있다는 의심도 해보게 된다.

 

*김정란의 시는 황현산이 밝히고 있듯이 노래로서의 시라기 보다는 새로운 말로서의 시이다. 이 점에서 그녀의 시는 박이문이 [시와 과학]에서 말하고 있는 시적 언어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노래는 낡아 구닥다리가 되더라도 여전히 노래로 남지만, 새로운 말은 자칫잘못하면 낡아서 쓸모없는 말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를 해보게도 된다. 김정란이 벌이고 있는 싸움은 그 성공 여부의 판단에 앞서 의미있는 몸부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