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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

최준. 개, 세계사, 91년 [2000년]

by 길철현 2016. 12. 1.

- 개, 세계사, 91


<개 같은 세상 개같이>

최준의 시는 그가 보여주고 있는 시니스즘이나 비관에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는 그 상황 때문에, 오히려 흥미롭다. 이 세상에 돌파구가 없으니까 마음껏 짖어나 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정효구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가 탄생을 보는 시각은 지극히 비관적인데도, 그 탄생은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미 뱃속에서 방금 나온 강아지들이

탯줄을 끊은 죄로 낑낑거린다

자립이 얼마나 끔찍한 불행인지

알몸뚱이로

눈 감은 채로 기어 나왔으니

알 턱이 있나

--<혀가 냄새맡는> 부분

 

태어나지 않아도 무방한 개가 태어날 때

죽지 않아도 좋은 개 한 마리가 죽는다 어딘가에서

살아 남아야 할 개 두 마리가 죽어간다

태어난 개의 이름이 지어지고

죽은 개의 이름이 지워진다

--<개의 이름> 부분

 

개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최준의 시는 우리 삶의 알레고리이다. 출생에 대한 시인의 시니시즘은 채만식의 [탁류]에 나오는 구절과 흡사하다.

 

네가 만일 너를 안다면, 그리고 네가 나오는 예가 어딘 줄을 안다면 너는 탯줄을 흝으려 잡고 매달리면서, 나는 싫다고 울며 발버둥을 치리라마는

출생에 따르는 불행을 두 사람 다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두 사람에게 비춰진 시대가 그만큼 험난했다는 것일까, 삶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일까? 여기서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최준의 시에서 더욱 피부에 와닿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버린 듯한 태도이다. 그것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며,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현실이 이렇다는 걸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취해서라도 짖어대는 것뿐이라는 정도이다. 그래서 최준의 시는 암담하다. 그러면서도 재미가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가볍게 방기하는 듯이 기술하는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 폭력과 살의만이 번득이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해결할 방도는 시인은 찾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인은 그러한 현실을 짖어대기만 할 뿐, 돌파구를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 지라도, 시인에게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피흘렸다는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삶은 고통이고, 죽음으로 돌진하는 급행 열차이다. 탈선의 위험도 다분히 있는데, 그것이 목적지로 더 빨리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더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최준 시가 안고 있는 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의 상상력, 일방향으로 움직이는 재치있는 상상력이, 좁은 폭에서나마 이 시집을 읽을 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