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민음사, 2000 (2000년 10월 9일 작성)
이 두 번째 시집도 첫 시집과의 연장선상에 서 있지만, 첫 시집보다 더욱 읽기가 힘들어졌다. 그 만큼 난해해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거기다 첫 시집만큼 재미있지도 않았다. 우선은 <自序>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 오한, 발열, 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드물게 경련과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똥 핥는 개처럼 당신을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사드와 아폴리네에르의 성애 소설을 생각해 보았는데, 그 역겨움이나 사디스트적, 혹은 매조키스트적인 성향에 있어서, 사드의 작품은 김언희의 시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그래서 사드의 작품은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작가가 공언하는 만큼 이 시집이 엽기적이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그 보다 주된 인상은 난해하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시집에는 패러디가 많다. 첫 시부터 정현종의 <섬>을 패러디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
모듬회 접시 한가운데에
그 섬이
있다
난자당한 살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
섬에
닿고
싶다
--김언희, <그 섬에 가고 싶다> 전문
정현종의 시가 보여주는 이상이나 낭만은 김언희에게 와서는 철저히 물화되고 욕망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패러디 시인 <한 잎의 구멍>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식욕이라는 것은 얼마나 기계적인가? 첫 시집에서 보여준 “욕망하는 기계로서의 인간”의 모습이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그 다음 표제시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닌다 도끼에 찍힌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는 앵두나무 저 여자는 언제 죽을까 죽은 앵두나무 아래 죽을 줄 모르는 저 여자 미친 사내가 도끼를 들고 다시 등뒤에 선다 미래의 상처가 여자의 두개골 속에서 시커멓게 벌어진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죽은 앵두나무 도랑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전문
첫 번째 언술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는 죽었는데, 여자는 잠이 들어 있기 때문인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져다 주는 대비감이다.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니는 양은, 여자가 꾸고 있는 꿈의 내용이리라. 그렇게 볼 때, 순진함의 대명사(블레이크의 <어린 양The Little Lamb>을 떠올려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는 이 양이 ‘무릎을 꿇은 채’ 절룩이는 이미지는 참혹한 것이다. 거기다 앵두나무는 도끼에 찍혀 그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다. 이 이미지도 참혹하다. (참혹극을 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여자는 왜 죽지 않을까? 앵두나무는 죽었는데? 화자는 이러한 의문으로 시를, 독자를 이끌어 간다. 도끼를 든 미친 사내는 전에 앵두나무를 찍은 사내이리라. 폭력, 섹스의 인자로서의 사내의 이미지. 이 사내는 급기야 여자의 머리마저 찍을 것이다. 이 시의 뒷부분은 무엇을 말하는가? 앵두나무를 둘러싸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반복되면서 강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 죽은 앵두나무.’ 검은 머리카락은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잠자는 여자도 종국에는 죽고 말았다는 말이리라. 김언희의 시는 하나하나 분석을 해보면 흥미롭다. 물론 시인의 의식의 흐름을 다 좇아가지는 못하지만. 이 시가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이리라. 나름대로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삶의 참혹함과 욕망의 무서움 등이다. 이 시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김언희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시가 의미의 전달 보다는 ‘강한 이미지의 제시’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그녀의 시는 받아들이기가 오히려 쉬운 편이다.
비어와 속어의 남발로 인한 도발적인 이미지의 제시, 물화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그것’이라는 낱말 등이 그녀의 시의 전체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시는 얼핏 읽을 때는, 혹은 거기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에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시였는데, 생각을 바꿔서 그녀의 시가 제시하는 이미지에 집중하여서 시를 차근차근 따라갈 때에는 오히려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이 점이 그녀의 시를 감상하는 포인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한 편만 더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이 <그라베>라는 시는 성교 행위를 시간(屍姦)의 이미지로 바꿔 제시하고 있는데,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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